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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65
50 제암리교회
화성시 향남읍 제암길 50 www.jeamch.com
희생자 29명을 기리는 기념물
제암리교회
“그가 있어 제암리가 기억되고 … ”
선교사인 영국인 스코필드(Schofield, F. W.)가
현장으로 달려가, 생생한 참상을 사진에 담고,
제암리교회는 1905년 설립되었다. 이 동네 목격자의 증언을 수록한 「수원에서의 잔악행위
출신인 안종후가 아펜젤러 선교사의 전도를 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미국으로 보냈다.
받고 자신의 집에서 시작한 교회다. 1911년
신자들이 늘어나자 8칸짜리 초가 예배당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아직 정주하는 목회자가
없어 인근에 있는 수촌리교회, 남양교회 목 이들은 4월 15일 거짓말로 주민들을 예배당
회자들이 순회하며 교회를 돌보았다. 제암리 으로 모이게 하고는 무차별 사격을 가하고,
교회가 한국교회에 널리 알려진 계기는 3. 1 석유를 뿌려 불을 질러 제암리교회 신자만
운동 때문이다. 3. 1운동이 일어나자 제암리 23명이 죽었다. 이 중에 남자 신자가 21명이
교회 신자들도 3월 15일부터 밤마다 뒷산에 었다. 그리고 이웃 동네인 고수리에서도 6명
올라 봉화를 밝히고 만세 시위를 계속했다. 3 이 죽임을 당해 총 29명이 죽임을 당했다. 제
월 31일과 4월 5일에는 발안 장터까지 진출 암리교회에 가면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로 세
하여 만세시위운동을 벌였다. 이때 일본 경 운 순국기념탑이 서 있다. 또한 당시의 참혹
찰과 충돌이 있었고, 일본 순사가 사망하자 상을 볼 수 있는 3. 1운동 순국기념관이 건립
일본 경찰들이 참혹한 제암리사건을 일으키 되어 있다.
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