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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경기도
47 남양감리교회
화성시 남양읍 남양시장로25번길 11 https://nych356.wixsite.com/website
남양감리교회는 1897년 4월 7일 존스 (한국명 조원 로 시무하다가 65세에 은퇴하고 은퇴목
시) 선교사에 의해 창립되었다. 한국인 제 1대 담 사로 남아 교회를 돌보았다. 이필주는
임자인 홍승하 목사는 최초의 하와이 이민단 단장 일제의 온갖 협박과 갖은 회유에도 창씨
을 지냈고, 해외에 최초로 세운 한인교회인 그리 개명과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하다가
스도연합 감리교회의 담임이 되었으며 하와이에 1942년에 지병으로 별세하였다.
서 신민회 등을 만들어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그후 민족과 나라를 위한 근대식 사립학교 보흥보
통학교 (1901) , 제하여학교 (1902) 를 설립하여 개화
문: 그대는 무슨 목적으로 이 선언서를
기 근대화에 앞장섰다. 남양감리교회에는 목사 이
인쇄하여 일반에 배포하였는가?
필주를 기념하는 두 개의 비석이 서 있다. 이필주
답: 그것은 동양의 평화를 주창하며
는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 조선의 자주 독립을 하기 위한 것이다.
람으로 참여하여 2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이필주 다시 말하면 국원을 회복한다는
는 1934년 3월 남양감리교회 부임하여 담임목사 것이다.
문: 피고는 독립이 될 줄 알고 독립을
주장하였는가?
답: 그렇다. 독립이 될 줄 알았다.
문: 금후에도 또 독립운동을 할 것인가?
답: 그렇다. 어디까지든지 독립운동을
할 것이다.
남양감리교회 이필주 목사 기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