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1 - 2023서울고 기념문집fox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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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겠으나, 남의 이야기만 들은 산은 영원히 아름다운 산으로 귀로만 남게 될 것
이다.
중국의 대표시인 도연명은 금아불위락(今我不爲樂), 지유내세불(知有來歲
不)이라 노래했다. 지금 내가 즐기지 않으면, 내년이 있을지 어찌 알겠는가? 내
나이가 벌써 ‘지금’이 ‘저금’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 나이가 되었다.
‘산행하기 좋은 계절’과 ‘산행하기 좋은 날씨’ 역시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 본
다. 모두 산행을 나서기 좋은 계절과 날씨는 있을 수 있어도 등산을 위한 좋은 계
절과 날씨는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는 말만큼이나 실천이 없는 수사일 뿐
이다. 문밖을 나서면 나도 자연의 일부다.
산행 길 위에서 갑자기 비를 만나 당황해 보고, 질퍽한 우중산행을 하다 비가
멈추고, 햇빛이 나무들 사이를 파고들며 나뭇잎에 앉은 물방울을 영롱히 비추고,
바람이 운무를 몰고 다니며 홀연히 열어준 풍경을 보고 감탄을 해 보지 않고서
는 자연의 일부가 되어 등산의 자유로운 멋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최근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우리 산하의 날씨가 급변하기 일쑤다. 시시
각각 변하는 날씨에 낭만적인 생각으로만 산행을 할 수 없다. 철저한 준비와 안
전산행이 담보되어야 이런 낭만적 감상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 세
상에 쉬운 산은 없다.
안양에 사는 내 집은 비봉산, 관악산으로 이어지는 명산 아래 있다. 조금 버스
타고 가면 청계산, 수리산 등이 가까이 있어 물 한 병 들고 산책하듯 자주 찾곤
한다. 먼 산, 높은 산을 가야 꼭 등산을 했다고 자랑할 일이 아니다. 예로부터 가
까운 산이 명산이라고 했다. 그 말뜻은 집에서 가까운 산이 그나마 자주 오를 수
있어 좋다는 말이며, 그 속에는 자신도 모르게 산에 대한 친밀도도 생기고, 가까
운 산을 자주 오르게 되며, 자신의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는 말이 숨어있다.
북한산, 지리산 한 번 안 다녀 본 사람이 히말라야 베이스캠프를 한번 다녀왔
171 _ 4060 우리들의 3色5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