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 - 여영난 도록 전자책150x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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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품으로 함께하는 추억 만들기
그림을 그리다 보면 가끔은 캔버스가 아닌 다른 재료들을 찾을
때가 있다. 궁색함 속에서 뭔가 새로운 시도의 필요를 느낄 때 찾
아낸 소재, 오래되어 줄이 끊어지고 낡아서 버려질 기타에 그림
을 그려서 전시회에 내놓은 적이 있었다. 평면 회화에만 익숙했
던 사람들로부터 의외의 호응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뿐만 아니
라 보잘것없이 버려졌던 우리 주변의 익숙한 각종 소품들을 화
지로 삼아 그림을 그리면 이러한 것들은 개성 있고 독특한 나만
의 인테리어 소품이자 작품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버리기에는 아
깝고 손때가 묻어 애정이 가는 악기,오래되고 유행이 지난 가구,
문짝, 주방의 도마, 나무주걱 등 무엇이든지 우리 일상에서 밀려
나기 직전에 보수하고 칠해서 구제해 주는 것은 환경보호 차원
에서도 좋을 뿐만 아니라 두고두고 애장품을 버리지 않는 수단
이 되기도 한다.
초등학교 일학년이 사용하던 나무의자를 새로운 의자로 교체하
면서 버린다고 하기에 아까운 생각도 들고 어린시절 추억도 생
각나 몇 개를 가져다 그림을 그리고 아이들 이름을 붙여 주었더
니 다들 몹시 좋아했다. 너무 앙증맞고 예쁘기도 해서 이런저런
폐품을 모아 시리즈 작품으로 만들어 본다. 일단 만들어 놓고 보
니 그리 미운 애물단지가 아닌지라, 너도나도 자기 집 창고에 넣
어둔 채 버리지는 못하고 그렇다고 쓰지도 않는 고물(?)들을 가
지고와 그림을 그려줄 것을 부탁해 온 적도 있다. 그 행위를 통해
자녀나 가족 개개인의 내부에 잠재되어 있던 미적 재능과 재치
를 볼 수 있는 기회도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가족 간에 단합하
여 만든 작품을 대할 때마다 행복지수는 상승할 것이다. 물론, 폐
품에 생명력을 되찾아주는 것 또한 우리의 기쁨이며, 새롭게 태
어나는 가보를 창작해내는 일이라는 점에서 또한 가치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소재를 찾아 즐긴다는 것은
미술가들에게 있어서도 창작의 소재를 늘려준다는 점에서 주목
할 만 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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