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7 - 구원이란 무엇인가-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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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에서 좀더 많은 정치적 자유의 형태로도 나타나야 하고, 이 세상에서 좀더 큰 풍요로도 나
타나야 합니다. 빈곤도 엄연한 고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빈곤과 관계없다면 그것
이 무슨 구원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으로도 나타
나고, 사회 정의와 평화로도 나타나고, 육신의 건강으로도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악과 죽음으로 통치하는 사탄을 결정적으로 꺾고 의와 생명으로 다스리는
만유의 주가 되시어 지금 우리에게 그의 절대적 구원, 곧 신적(神的)인 온전한 삶(‘영생’)을 베
푸십니다. 그러나 사탄은 아직도 굴복하지 않고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하고 죽음으로 그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사탄의 죄악과 죽음의 통치에 노출되어 고난
받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온전한 삶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오직 믿음으로 그것
을 부분적으로만 누리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재림하셔서 사탄의 통치를
완전히 종식시키고 그의 의와 생명의 통치를 완성하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그가 주시는 신
적(神的) 생명, 즉 영생을 온전히 누릴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육체로부터 분리된 우리의 영
혼만의 구원이 아니라, 우리의 실존 전체의 구원입니다.
예수는 도대체 어떤 메시아인가
오늘 우리가 다룬 문제는 신약 시대에 그리스도의 사도들과 신학 논쟁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해방 신학이 요구하는 메시아 또는 그런 신학이 그려 내는 예수는 어떤 분입니까? 지
금 여기서 좀더 많은 정치적 자유, 좀더 많은 사회적 정의, 좀더 많은 경제적 여유 등등 이런
것들을 가져다 주는 분이 아닙니까?
보수 신학은 해방 신학의 이와 같은 견해에 대항하여 또 다른 극단으로 가는 경향이 있습니
다. 즉 영혼과 육신을 가르고, 금세와 내세를 엄격히 구분하는 이원론적 사고에 젖어 이 세상
또는 육신은 소용이 없는 것이라며 내세에서의 영혼 구원에만 집착하기도 합니다. 해방 신학
이 그리스도의 구원을 이 세상적 가치들로만 축약시켜 버린다면, 보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
의 구원을 내세워 이른바 영혼의 영역으로만 축약시키곤 합니다. 그러나 보수적 그리스도인들
도 신학적인 논리로는 구원을 영혼의 영역에 한정하려고 주장하지만, 실제의 삶에 있어서는
그리스도가 그들에게 육체적 건강, 사업에서의 성공, 시험 합격 등과 같은 이런 세상적 가치
들을 가져다 주기를 간절히 비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도 내세에서의 영혼 구원은 관념의
세계에 묶어 둔 채, 실제로는 해방 신학자들같이 그리스도의 구원을 이 세상적 가치들에만 축
약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사실은 그들이 비판하는 해방 신학자들같이 육신적
인 메시아 사상에 젖어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리하여 해방 신학자들과 그들의 실제적 차이점
은 전자가 사회 전체의 자유, 정의, 풍요, 건강 등을 추구하는 것뿐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런 점 때문에 우리는 매우 주의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의 정치적 압박으로부터의 해방,
경제적 빈곤으로부터의 해방, 질병으로부터의 해방 등 이런 것들도 다 그리스도의 총체적 구
원의 구체적 반영으로서 절실한 것입니다. 사업과 건강을 위하여, 자녀의 합격을 위하여 기도
하는 것이 틀린 것이 아닙니다. 더 많은 정치적 자유, 사회적 정의, 경제적 풍요, 환경적 건강
등을 위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투쟁하는 것이 틀린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구원은
우리의 실존의 모든 영역들에 총체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구원을 이 세상의 몇 가지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가치들에 축약시켜서도
안되고, 이 세상과는 별개의 무슨 영혼 구원만으로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
원은 우리 피조물들을 창조주 하나님께 연합시켜서 우리가 그분의 신적(神的)인 삶, 즉 죽음
(고난들)의 이면이 없는 온전한 삶을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은 지금 여기서 벌
써 확대되는 자유, 의, 사랑, 풍요, 건강 등으로 구체적으로(그러나 불행히도 단편적으로!)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