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5 - 구원이란 무엇인가-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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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가  십자가에  달리는  그  순간까지  메시아가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수난과  죽음
                  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예수께  반대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무엇에  의하여  그들의  인식의  변
                  화가  일어났습니까?  예수가  하나님에  의하여  부활하여  그들에게  나타났을  때,  그들은  하나님
                  이  예수를  옳다고  확인하셨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들은  구약의  메시아적  예언들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다윗  왕조의  재건을  고대하던  유대교
                  메시아  사상을  배격하고,  자신이  다윗  왕조가  하나의  그림(illustration)으로  가리키는  하나님
                  나라  그  자체를  자신의  선포와  죽음으로  실현하는  메시아라는  예수의  주장을  하나님이  옳다고
                  확인하셨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를  메시아(그리스도)로  인식하고  선포하
                  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이  새  계시에  비추어  구약의  계시를
                  새롭게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것의  유대교적  해석은  외형적  또는  ‘육신적’인  것임을  알
                  았고,  예수가  그것의  본질적  또는  ‘영적’  의미를  제대로  해석하였고  성취하였음을  깨달았습니
                  다.
                  따라서  그들에게  예수가  하신  일,  즉  하나님  나라의  구원을  귀신  쫓아내고  병자를  치료함으로
                  써  시위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여  하나님  나라로  들어오라고  초대하고,  자신의  몸과  피
                  를  대속과  새  언약의  제사로  십자가에서  내어  주시어  그들을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으로  만들
                  어  그들  위에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게  한  것,  이것이  구약의  예언들이  진정으로  의도한  메
                  시아적  행위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다윗  왕조가  이  세상에서  그려  내도록  되어  있던,  그
                  러나  제대로  그려  내지  못하고  만  하나님  나라를  가져온  메시아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일체의
                  행위가  하나님  나라의  본질적  구원을  가져오는  사건이었습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는  근본적으로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  또는  자녀들로  만들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잔치에  참여하거나  하나님의  부요함을  상속받게  해주겠다는  약속과  하나님
                  나라  속으로  들어오라는  초대의  성격을  지녔습니다.  예수의  죽음은  대속과  새  언약의  제사로
                  서  이  약속을  제의적으로  성취한  사건으로  실제로  그들의  죄가  용서되게  하고  그들을  하나님
                  의  백성  또는  자녀들로  만든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연히  예수의  대속과  새  언약의  제사로서의  죽음을  그의  메시아적  행위의
                  중심으로  보고,  그들의  선포를  거기에  집중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가  구약이  말한  진정한  메시아(그리스도)요,  사도들의  선포가  옳음을  확인하게  됩니
                  다.
                  내재적인  것을  구하는  ‘육신적’  메시아  사상에  주의하자
                  오늘날까지도  우리  기독교와  유대교의  논쟁은  여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누가  구약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는  것입니까?  기독교가  올바로  보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이  문제를  이렇게
                  도  말할  수  있습니다.  유대교적  메시아  사상이  옳은  것입니까,  아니면  신약의  사도들이  선포
                  한  메시아  사상이  옳은  것입니까?  또는  전자가  말하는  구원이  진정한  구원인가요,  아니면  후
                  자가  말하는  구원이  진정한  구원인가요?  어느  것이  구약  성경의  진정한  의도를  더  잘  반영하
                  고  있는  것입니까?  이  세상  속에서  좀더  많은  자유와  좀더  많은  정의와  좀더  많은  풍요를  가
                  져다  주는  자가  우리에게  진정한  구원자입니까?  아니면  창조주  하나님의  무한한  부요함을  우
                  리  피조물들에게  덕  입게  해주는  분이  진정한  구원자입니까?  여기에  갈림길이  있습니다.  이런
                  갈림길에  서서  곰곰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는  신약  성경이  선포하는  복음의  진리  됨에  대한  확
                  신이  더  커지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유대교적  ‘육신적’  메시아  사상뿐  아니라  모든  ‘육신적  메시아’  사상들,  예컨대  공산주의나  자
                  본주의나  인본주의적  문명  낙관론  등과  같은  것은  사람들이  고대하는  이  세상  내에서의  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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