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6 - 구원이란 무엇인가-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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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유와 정의와 풍요와 평화와 만족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열혈당 운동을 포함한, 신약
시대를 전후한 모든 유대의 메시아 운동들이 이 사실을 잘 보여 주고 있지 않습니까? 또 오
늘날 붕괴한 마르크스 레닌적 메시아주의와 위기의 자본주의가 이 사실을 웅변적으로 증거하
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하나님 나라 선포와 대속과 새 언약의 제사로서의 죽음을 통하
여 이룬 구원은 우리를 창조주 하나님께 연합시켜 그의 부요함에 의지하고 그의 선한 뜻에 순
종하며 살도록 함으로써, 종말에 완성되기 전 지금 벌써 더 많은 자유, 더 많은 정의, 더 큰
풍요, 더 큰 평화, 더 큰 만족으로 부분적으로나마 그 실재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본
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한 어떻게 인간의 소외와 갈등을 초래하는 자기 주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맘모니즘(mammonism) 또는 물질주의에 빠져 있는 한 어떻게 이웃을 사랑하여
공동체적 자유와 정의와 평화를 이룰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그리스도적 행위에 근거
하여 창조주 하나님과 올바로 연합되어 그의 무한한 사랑과 부요함에 참여할 때, 우리는 자아
의 감옥에서 해방되고 물질적 가치들을 상대화할 수 있게 되어 비로소 자기 주장하는 대신 이
웃을 사랑할 수 있고 비로소 공동체적 자유와 정의와 평화와 풍요가 확대되게 됩니다〔예수께
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에게 요구한 두 계명, 곧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헌신一의존과 순종一과
이웃에 대한 ‘내 몸같이’의 사랑(막 13:29–30)을 참조하라〕.
이렇게 영원한 창조주 하나님과 관계없는 이 세상적, ‘육신적’ 메시아 사상은 이 세상 내에서
의 진정한 자유와 정의와 평화와 풍요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대속과 새 언
약의 죽음으로 우리를 영원한 창조주 하나님께 연합시킨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종말에 하나
님의 무한에 완전히 참여하여 완전한 신적(神的) 삶(영생)을 누리게 할 뿐 아니라, 지금 벌써
더 많은 자유와 정의와 평화와 풍요 등으로 나타나는 그 영생의 ‘첫 열매’를 누리게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총체적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한 가지 오해를 피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여기 설명한 신약
성경이 기독론과 구원론을 곧장 존재론적인 이원론으로 번역해서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축복
등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고 영혼의 구원만 중요하여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삶에 대
해서는 아무런 작용을 하지 않고 오로지 하늘나라에서의 우리 영혼만 구원하는 구원자라고 생
각하거나, 시간적 이원론으로 번역해서 그리스도는 이 세대와는 관계없고 오는 세대의 구원만
을 확보하는 분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다윗 왕
조가, 출애굽이, 또는 야곱의 우물이 그림자로서 가리킨 절대적 구원과 자유와 풍요와 정의입
니다. 그것은 방금 살펴본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이미 이 세
상에서 실현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 첫 열매를 누리게 하고 그의 재림 때 있을 그것의 완성을
바라보게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가져오는 구원은 우리의 실존 전체에 대한 구원입니다. 그것이 우리 육신과
는 소용없고 영혼에만 소용 있는 구원도 아니고, 그것이 이 세상은 관계없고 내세에만 관계되
는 구원도 아닙니다. 우리 실존 전체, 우리의 실존을 영과 혼으로 나누어 생각하든 이 세대와
오는 세대로 나누어서 생각하든, 우리의 실존 전체에 대한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원을
이 세상과 이 육신적 삶으로만 축약하면 안됩니다. 그러나 이 구원을 이 세상과 육신적 삶과
는 관계없는 것으로 생각해도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우리 피조물을 다시 한 번
창조주 하나님께 접합시키는 총체적인 구원으로서, 이 구원은 그의 재림 때 완성될 것이지만
우리는 지금 그 첫 열매를 이미 누리고 있습니다.
그 첫 열매는 어떻게 나타납니까? 우리 실존 전체를 통하여 나타납니다. 따라서 그것은 이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