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 - 곱슬고양이 김영희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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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등위의 춤 - Dancing on the top of the feet
(중략)
소녀는 아주 작은 꼬마였을 때로 돌아가 아버지의 발등 위로 올라갔어요. 음악이 흘러나오면 아버지가 자신의
발등 위에 소녀의 두 발을 올라서게 하고서 함께 춤추던, 아주 아주 어릴 적으로 돌아갔던 거예요. 예전엔 아버지의
무릎과 허리 언저리에 머물렀던 소녀의 키가 자라 이제 아버지의 심장 가까이 귀가 닿았고, 음악에 맞춰 발을
옮기고 있다고 느꼈던 둘의 춤이 실은 아버지의 심장 소리에 맞춰 움직이고 있음을 알게 됐어요.
아버지는 심장 속에서 한 번도 소녀의 노래를 멈춘 적이 없었고, 발등 위에서 한 번도 소녀의 발을 내려놓은 적이
없단 것도 알게 됐어요. 아버지와 소녀는 원래 그렇게 하나였던 그 순간으로, 말과 글이 필요 없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 오래오래 함께 춤을 추었어요. 맞대고 있는 심장과 귀가, 서로를 지지하며 한발 한발 내딛는 발이, 그 후로
다가올 어떤 시간의 모래 위에도 흩어지지 않고 또렷하게 각인되어 서로의 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아버지와 소녀는 기도했어요.
Tourmaline, Ruby & 18K G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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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슬 고양이- 김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