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 - 교화연구 2021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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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죠.
                말은 이렇게 하는데 사실은 그 과정은 쉬운 게 아니죠. 왜냐하면 수행이 되지

              않고 삼밀유가에 대한 수행이 되어있지 않으면 순간적인 삼마지도 되기 어렵
              지만 조금만 훈련하면 된다 하더라도 그 삼마지의 상태가 계속 가도록 하는 것

              은 어려움이 있죠.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에 삼마지에 머무른다 하더라도 삼마
              지에 머무르는 그 마음을 우리의 업이 가만두지 않아요. 무시광대 겁으로부터

              금일에 이르기까지 형성된 우리의 업이 제일 먼저 작용시키는 것이 마음입니
              다. 그러니까 삼마지에 머물러서 내 마음이 정해지려고 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가만두지 않고 흔들어 대는 게 우리의 업입니다. 그런 업이 내 마음을 직접적으
              로 흔들기도 했다가 외마로 나타나죠. 어제 법문처럼 벨이 울려서 우리를 혼란

              스럽게 만드는 겁니다. 그럴 때 필요한 말이 ‘겁내지 아니하는데 해탈함을 얻느
              니라’입니다.

                ‘삼마지라 하는 것은 그 마음을 일경에다 머물러서 정함이니’의 ‘일경’에 머문
              다고 하는 것을 삼밀유가를 알기 전에는 단순하게 하나의 대상에 마음을 집중

              하는 것으로 해석을 했을 때는 아자, 월륜, 본존, 부처님처럼 임의로 가상의 대
              상을 하나 정해 놓고 거기에 내 마음을 집중하도록 하는 차원의 해석을 합니다.

              지금도 학자들이나 관법을 지도하는데 가면 그런식으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그
              동안 진리의 힘 또는 삼밀유가에 대한 설명을 했는데 그 내용을 잘 이해하면

              일경이라는 것은 억지로 일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보리심론 본문에 ‘법이에
              보현대보리심에 응주함이라’고 한 것처럼 마땅히 법이에 보현대보리심에 주하

              도록 하라는 말입니다. 그때 강조하는 말이 자연법이인데, 자연스럽게 되어야
              우주법계의 진실과 통해요. 물론 좋은 인연을 짓고 내 마음을 인위적으로 집중

              해서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일경이 되고 일경이 된 그 마음이 결국 보현대보리
              심에 주하는 것이 되니까 그 자체도 하나의 방법이긴 하지만 자연법이로 된다

              는 그 느낌이 없으면 계속 일경에 머무르는 것을 하나의 대상에 억지로 머물려
              하다보면 힘들어져요. 힘들어지니까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고 일경에다 내 마음

              을 정하는 시간이 짧죠. 길게 못하죠. 집중을 억지로 하다 보니 인상이 찡그려
              지는 거예요. 집중을 억지로 하는 것은 그 자체가 궁극적인 일경에다 머무르는

              것이 아니예요. 그러다 보니 오래 못가는 거예요. 용을 쓰고 힘이 들면 체력이
              바닥이 나듯이 마음의 체력도 바닥이 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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