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 - 교화연구 2021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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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옴마니반메훔만 하지만 관법을 하는 곳에서는 월륜을 모셔놓기도 하
고 아자를 모셔놓기도 하고 또는 만다라를 모셔놓고 부처님을 관하기도 하는
데 딱 거기에 마음을 집중해라 이렇게 가르치잖아요. 처음에 발심이 들 때는 잘
하지만 그 초발심이 언제까지 갑니까? 초발심의 한계는 자기가 신이 나서 발심
할 때는 힘이 드는지 몰라 그렇지 사실은 자연법이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
으로 되는 거예요. 초발심 상태가 그런 속성이 있어요. 그 순간에는 힘 드는 줄
몰라요. 신이나 있으니까. 그러나 신이 났지만 신이 난 그 마음이 억지로 용을
쓰는 그 마음으로 한다는 그 본질에는 변함이 없어요. 아파도 진통제 주사 맞으
면 모르듯이, 의학적으로도 신이 날 때는 엔돌핀이라는 호르몬이 나와서 내 몸
과 마음은 힘 드는 데 그것을 못 느끼도록 만들어요. 그런데 내 몸의 체력과 마
음의 체력이 소진되었는데 신나는 것을 계속 가져갈 수는 없잖아요. 몸과 마음
의 체력이 어느 정도 떨어지고 엔돌핀 수치가 뚝 떨어지면 체력이 바닥나고 마
음의 체력이 바닥난 것이 그때 나타나요.
삼밀 수행하는 것도 그렇지만 신행 생활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처음 심인
당에 오면 초발심이 되어 막 하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매너리즘에 빠지
게 되는 거예요. 엔돌핀이 빠지면서 초발심에 소진됐던 몸과 마음의 체력들이
지쳐서 그냥 가버리는 거예요. 원리가 그렇게 되는 겁니다. 하던 것을 안 할 수
는 없고 시간만 채우고, 앉아 있어도 별 다르게 내 자신에 엔돌핀이 일어나게
하는 그런 일이 없으면 그냥 지치는 거예요. 공덕이 일어나야 엔돌핀이 일어나
니까 자꾸 공덕만 생각하는 거예요. 그것을 의학적인 설명이라고 말할 수 있으
려나 모르겠지만 몸과 마음의 원리를 응용해서 설명하면 그렇게 됩니다. 공덕
이 일어나면 다시 엔돌핀이 돌아서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르고 공덕발이 떨어지
면 마취상태에서 깨어나는 거예요. 마취상태에서 깨어나서 전에 하던 것은 그
대로 하기는 하는데 왜 해야 하는지를 몰라요. 그런데 애초에 자연법이로 삼마
지가 되면 엔돌핀이 안돌아도 자연스럽게 자연법이가 되니까 염송하고 삼마지
보리심에 있는 그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느껴져요. 왜냐하면 진리의 힘을 느끼
는 상태니까 그렇죠. 진리의 힘이 간단하게 말해서 진리의 힘이지 작용하는 것
은 무궁무진한데 거기서 찾아야 할 의미는 얼마나 많겠어요? 애초에 자연법이
로 삼마지 보리심이 되었으면 공덕발의 마취상태에 너무 의존하지도 않겠죠?
마취상태에 의존하지 않고 자연법이로 일경에 들어가는 겁니다. 이런 경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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