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 - 교화연구 2021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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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조 회고담
종조 회고담
심인중학교의 설립 인가
자선사부의 설치로 종단에서는 종립학교 인가 작업을 서둘렀다. 대종사께서
는 우선 진기 7(1953)년 12월 21일, 새 교사(校舍)를 신축 할 때까지 임시 사용
할 교사로 구 경북여고 교사를 1백만 환을 들여 매입하게 하였다. 그리고 심인
중학교 초대 교장에는 청구대학교에 재직 중이던 강창호(운범 강복수 박사) 교
수를 임용하였다.
관련 서류가 완비되어 심인중학교 인가 서류를 제출한 것은 진기 8(1954)년
7월 31일이며, 당시의 여건상 명칭을 심인고등공민학교로 신청하였다. 심인중
학교에 대한 최종 인가는 진기 9(1955)년 4월 8일에 문교부장관으로부터 완성
년도까지 12학급을 모집할 수 있다는 정식 인가가 나왔다.
대종사와 전 스승들이 종립학교의 설립에 총 매진하는 가운데 뜻하지 않는
사건이 불거져 나왔다. 그것은 종단의 규모가 학교를 가질 만큼 성장하자 위해
하는 세력들이 안팎에서 준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영중 등이 꾸민 이른바 ‘십
이불납 선언’의 파동으로 인해서 대종사께서 피검되는 상황에 이르는 등 개종
이후, 최악의 법난을 맞았으나 이 가운데도 교육불사의 속도는 조금도 늦춰지
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초대 교장을 맡아 학교 인가 및 초석을 다지는데 큰 기여를 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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