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6 - 교화연구 2021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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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가 미래가 아닌 지금 현재만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녀는 조애나
메이시의 표현을 빌려 현대인을 ‘시간이라는 덫에 붙잡힌 사람들’이라고 표현
한다. 단기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빠른 속도로 결정을 내리는 현대인의 풍조
를 꼬집은 것이다. 말루프는 인간이 시간에 대해 얼마나 왜곡된 관념을 가지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싶다면, 인간 외에 다른 종들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
는지를 보라고 조언한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모든 종들의 시계는 오로지 미래를 향해서만 간다. 식물
이나 동물이나 모든 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다음 세대를 위한 만반의
준비다. 식물은 자신의 에너지 대부분을 꽃과 꿀을 만드는데 쓴다. 그리고 씨앗
에 양분을 공급하고 싹을 틔울 수 있도록 퍼뜨리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식물
들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면서까지 후세대를 만드는데 애쓰는 이유는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동물들
에게도 다음 세대는 아주 중요하다. 동물들은 짝짓기를 할 때 목숨을 건 모험을
감수한다. 전염병의 감염으로부터의 위험, 침입자로부터의 위험, 특히 암컷은
새끼를 낳을 때의 위험을 기꺼이 감수한다. 살아남은 강한 유전자로 다음 세대
를 잇는다는 점에서 모든 생물들은 미래지향적이다.
그렇다면 나무와 숲, 나아가 생태계를 보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녀가
제시하는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인간이 살기 위해 필요한 행위 하나하나가
다른 생명들의 안식을 파괴하는 일일 수 있음을 인식하고 그러한 사태를 최소
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말루프는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재생지 이용을 제안한다. 일반 종이는 10%
의 재생 종이와 90%의 새 펄프로 만들어지지만, 재생지는 100% 재생 종이로
만 만들어진다. 즉 재생지는 새로 나무를 잘라 내지 않고도 만들 수 있다. 일반
종이와 재생 종이의 가격 차이는 2달러 정도. 2달러는 누군가에게는 큰 금액일
수 있지만, 나무와 그 주위에 사는 많은 생명체들을 생각하면, 또 나무 한 그루
가 자라기 위해 필요한 세월을 생각하면 그리 큰 금액은 아니다.
-‘법정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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