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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대동여지도의 오산 지역
위의 (그림 3)에서 오산지역은 행정적으로 남북에 진위(振威)와 수원 사이에 놓여 있으면서, 농업에
적합한 산과 강이 주변을 감싸는 모습이다. 그렇다고 홍수와 산사태가 벌어질 만큼의 거대한 산천이
둘러져 있는 모습이 아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야가 발달된 지형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산림천택(山林川澤)’이 어우러지는 농지와 가옥이 정주하기에 유리한
공간이었으며, 오늘날 오산시가 탄생되었던 역사 지리적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오산의 자연 지리적 환경이 풍요한 결과, 조선 초기부터 국왕은 물론 인물과 물산이 거처 가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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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교통로이면서 유통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태종의 경우 1406년과 1412년 오산 인근에 행차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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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후 1416년(태종 16) 2월 오산에 행행(幸行)하여 머물며 강무(講武)를 하였으며, 정종도 10월에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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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하여 매사냥을 하기도 하였다. 국왕이 오산지역에 행차하는 사례는 세종대에도 이어져서 143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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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15) 3월에도 매사냥을 거행하였다. 연이어 4월에도 세종은 광주의 낙생역을 거쳐 오산에 행
오산시사
제
2 49) 『태종실록』 권11, 태종 6년 3월 1일(신묘).
권
50) 『태종실록』 권24, 태종 12년 9월 25일(정미).
51) 『태종실록』 권31, 태종 16년 2월 20일(계미); 2월 22일(을유).
52) 『태종실록』 권32, 태종 16년 10월 15일(계유).
122 53) 『세종실록』 권59, 세종 15년 3월 26일(기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