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5 - 오산문화 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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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VOL. 60 osan culture
아주 가끔 쿵하고 가슴이 내려앉을 때가 있다. 그 균 그리고 난설헌이 함께 하는 강릉 5문장가의 시
럴 때면 나는 검푸른 파도가 포효하는 인적 없는 가 새겨져 있는 다섯 개의 큰 시비가 있다.
겨울 경포대엘 가곤 한다. 아기자기 섬세한 어머
니의 바다 서해와는 다르게 아버지의 바다 동해 난초향과 눈처럼 깨끗한 성품을 지닌 난설헌은 8
는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저 너머의 세상을 다시 살 때 신선 세계인 상상의 궁궐 광한전 백옥루의
한 번 꿈꾸라며 관계에 지친 어깨를 토닥여 주곤 상량식에 자신이 초대되었다고 상상하고 쓴 ‘광한
한다. 그래서 나는 일상에 지치고 삶에 환기가 필 전백옥루상량문’을 지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
요할 때마다 겨울 경포대를 다녀온다. 다. 태어나 15년간 자유로운 영혼의 가풍 속에서
이번 강릉길에서는 강릉에서만 볼 수 있는 역사 마음껏 배우고 마음껏 재주를 키워 나가던 난설
적인 곳들을 방문했다. 대궐 밖 조선 제일 큰 집 헌 허초희는 전형적인 조선 사나이 김성엽과 결
이었던 선교장과 신사임당의 오죽헌 그리고 허 혼하면서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다.
균·허난설헌 기념관을 들렸다. 그런데 허균·허 결코 길지 않은 12년간의 결혼 생활은 지극히 가
난설헌 기념관에서 뜻밖에 내 가슴을 시리게 하 부장적인 남편과 완고한 시댁과의 갈등, 그리고
는 한 여인을 만났다.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 어
린 어미의 피를 토하는 아픔으로 점철된 시간이
그녀는 바로 허난설헌, 이름이 초희였던 난설헌 었다. 게다가 상주 객관에서 이승을 하직한 사랑
은 조선 중기에 태어났으며 가족으로는 아버지 하는 아버지와 정신적인 지주였던 오빠 허봉의
허엽, 오빠 허성, 허봉, 동생 허균이 있는데 난설 객사는 스물일곱 살의 난설헌이 계속해서 삶의
헌을 포함한 이들을 허씨 5문장가라 불렀다. 이중 끈을 이어 가기엔 너무나 버거운 일이었는지도
에 오빠 허봉은 난설헌의 문장 뿐 아니라 그녀의 모른다.
인생에 있어서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
다.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집필한 남동생 탁월한 감각과 문장력으로 국내는 물론 중국(당
허균과는 강릉이 낳은 오누이 문인으로도 잘 알 나라)과 일본에까지 천재성을 인정받았던 난설헌
려져 있다. 키 큰 소나무가 멋지게 늘어 서 있는 허초희가 남긴 주옥같은 213수의 시 중에 아래의
난설헌의 생가 터는 경포호가 바로 앞에 있었는 ‘곡자(哭子)’는 딸과 아들을 잃은 뒤 그 고통을 읊
데 거기엔 아버지 허엽과 큰 오빠 허성, 허봉, 허 은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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