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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름 소 돼지 닭 조라 흰시루 팥시루 기타
탑동 + + +
계 18 2 2 10 9 6
먼저 희생(犧牲)은 소를 올리느냐 돼지를 올리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는 지역의 경제적 능
3)
력 정도와의 관련이 더욱 밀접하다. 여력이 되면 소를 올리고 여력이 부족하면 돼지를 올린다. 그런
데 닭을 올리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 물론 제의의 규모나 경제적 여건과 무관하지는 않지만, 금암동
과 세교동 오리골 최촌말에서는 의미의 차이를 보인다. 먼저 금암동은 닭을 올리되 암탉과 수탉 두
마리를 올렸고, 최촌말의 경우는 수탉만을 올렸다. 이는 명확하게 조사되고 연구되지는 않았지만 신
격과의 관련성이 있어 보인다. 세교동의 홍촌말과 원촌말에서는 산제사라 하였고, 최촌말에서는 산
신제라 하였던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말하자면 마을의 신격을 산신에 두고 있지만 그 엄격함에
서의 차이가 닭을 제수로 올리느냐 올리지 않느냐의 차이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흰시루를 올리는가, 팥시루를 올리는가는 신격을 산신이라 하면서 예법을 잘 계승하고 있
느냐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 결론적으로 산신의 시루는 흰시루이다. 오산시에서는 9개의 법
정동이 흰시루를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6개의 법정동에서는 팥시루를 올리고 있었다. 이는 마을제
사를 산제사라고 하는지 당제사라고 하는지의 명칭적 차이에서도 드러났던 차이이다. 즉 당제사라
명칭을 하지만 실제는 산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지역과 당제사라고 하면서 산신이 아니 지역의 토지
신에게 제사를 올리느냐와 무관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지곶동은 당제사라고 하면서 흰시루를 올리고
있고 탑동은 당제사라 하면서 팥시루를 올리고 있다. 그러니 지곶동은 당제사라 하여도 산신제를 지
내고 있는 지역이며 탑동의 경우는 토지신을 주신격으로 모시고 있는 지역이 되는 것이다. 이는 원동
에서도 세 개의 마을이 흰시루를 올리는 마을과 팥시루를 올리는 마을로 구분되는 것과 같다. 원동의
세 개 마을이 당제사라고 하면서 또한 당신화인 당이 생겨난 유래담을 비슷하게 공유하고 있으면서
도 마을의 특성에 따라 산신의 신격과 토지신의 신격을 다르게 인식하고 모시고 있는 경우로 판단된
다. 이는 원동의 절골은 청송심씨들의 세거지인데, 이 곳에서 모시는 신격은 조상신으로 보여지기 때
문이다. 다시 말하여 조상신이 마을의 토지신으로 좌정된 예가 아닐까 한다.
떡을 올리는 데에 있어 가장 특색이 있는 지역은 부산동이다. 부산동은 지역에서 불리는 이름이 가
마뫼이다. 이는 부산(釜山)의 부(釜)가 ‘가마’로 ‘가맣다’, ‘검다’의 의미이며 검은산의 의미로 부산으로
기록되었음을 보여주는 마을이다. 또 이곳은 경기지역 재인(才人)들이 학습하면서 본거지를 이루고
오산시사 살았던 경기도 가계세습무인 화랭이들이 모여 살았던 지역이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긴다.
그러하기에 검은시루를 올린다고 판단한다. 검은시루는 조상시루이다. 조상께 올리는 떡이 바로 검
은콩으로 올리는 검은시루인 것이다. 이는 마을의 형성과정과의 관련성에서 생각하고 추정하여야 한
제
6 다. 다시 말하여 화랭이집단의 거주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화랭이의 조상 가운데 입향조에 해
권
128 3) 다만 나라의 제의와는 다르다. 나라에서는 임금이 직접 참여를 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소와 돼지가 달랐다. 임금이 직접 참여하는 경우에
희생으로 소를 올렸으며 직접 참여하지 않는 경우에는 돼지를 희생으로 올렸다. 「華城築城時 告由祭硏究」, 김용국. 비교민속학회,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