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9 - 오산문화총서 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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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골짜기에 임하여 초루를 세워서 손님과 나그네가 모이는 처소를 삼으니 드넓으며 사랑스럽
도다. 이름하여 진남루라 하였다.…(후략)…
『水原府邑誌』의 기록을 종합해보면 진남루는 독산성의 남쪽 모퉁이 성 위의 누각 또는 문루로
손님과 나그네가 머무르는 곳으로 이는 『水原郡邑誌』의 기록과 유사하다.
Ⅲ. 진남루의 위치에 대한 재검토
진남루의 위치에 대해서는 대부분 남문에 있는 문루로 판단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논의 및 검
토가 이루어진 바가 없으며 최근에는 문루가 아닌 남장대였을 가능성을 지적한 연구사례도 있
15)
다 . 따라서 이번 장에서는 진남루의 위치에 대한 기존의 견해를 검토하고 Ⅱ장에서 검토한 문
헌을 바탕으로 위치에 대하여 추론하고자 한다.
1. 기존 견해 검토
현재 진남루는 일반적으로 남문의 문루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로 2014년에 수립 된 진남
16)
루 복원 기본계획에서도 남문의 문루로 복원계획이 수립되었다 . 이와 같이 진남루를 남문의
문루로 판단하게 된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추정해 볼 수 있는데, 먼저 장헌세자의 경진년 유숙
과 관련된 기록으로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17)
『朝鮮王朝實錄』正祖實錄
정조14년 2월 10일
15) 주5의 이용범 논문.
16) 주4의 보고서.
17) 『朝鮮王朝實錄』正祖實錄
정조14년 2월 10일
…(전략)…父老等齊奏曰: "駐駕日, 親問疾苦, 發倉穀以賜之, 臨鎭南樓 射帿, 連獲四矢。"…(후략)…
독산성 진남루 위치에 대한 재검토 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