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3 - 오산문화총서 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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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남문의 문루에는 별도의 이름이 없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는데 문헌에도 남문루
                       가 존재하는 것만 기록되어 있으며 가장 마지막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일제강점기 기록에도 남
                                                                 25)
                       문에 문루가 있고 소관이 토목국 이라는 것만 기록 되어 있고 별도의 이름은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문루는 있으나 별도의 이름은 없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이는 남문의 이름이 있기 때문에
                       별도의 이름을 붙이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2. 위치추론



                         기존의 견해를 검토한 결과 진남루는 남문의 문루와는 별도의 건물로 남문이 아닌 독산성 내
                       다른 곳에 위치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문헌기록을 토대로 진남루의 위치에 대해서 새

                       롭게 추론해 보고자 한다.
                         진남루의 위치에 대해서는 『華城志』와 『水原郡邑誌』, 『水原府邑誌』에 기록되어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華城志』山城

                         Ⓐ 鎭南樓
                         운주당의 남쪽에 있다.…(중략)…성의 남쪽에는 벼랑이 있어 변응성이 누각을 세워 손님들이
                       와서 접대하는 곳으로 만들었다. 꽤 넓어 즐길 만하였으니 “鎭南樓”라 하였다.…(후략)…



                         『水原郡邑誌』山城
                         Ⓑ 鎭南樓

                         운주당 남쪽에 있다.…(중략)…변공은 성 남쪽 모퉁이의 절벽에다 초루를 세워 손님과 나그네
                       의 오가는 장소로 마련하여 그 애명을 진남루라 이름 하였다.…(후략)…



                         『水原府邑誌』山城
                         Ⓒ 樓亭

                         진남루는 독성 남쪽에 있는 표루로 이정구가 기문을 지었다.…(중략)…성의 남쪽 모퉁이 절벽




                       25) 殖産國 山林科(추정), 1916~1917, 『京畿道古蹟臺帳』.
                         …(전략)…南門ニハ門樓アリ(土木局所管)…(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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