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2 - 오산문화총서 3집
P. 112
城堞條에 포함되어 있고 진남루는 鎭南樓條에 별도로 기록하고 있으며 심지어『水原府邑誌』에는
樓亭條에 기록하는 등 구분하고 있어 진남루를 남문의 부속건물이 아닌 별도의 건물로 인식하
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진남루의 위치에 대해서 남문의 문루가 아닌 ‘운주당의 남쪽’ 또는 ‘성의 남쪽 모퉁이
절벽’으로 기록되어 있고 용도에 있어서도 독산성을 방문하는 손님을 접대하기 위한 장소로 건
립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華城志』 ①,『水原郡邑誌』 ①) 특히,『日省錄』에 기록된 남문루의 규
모를 보면 진남루가 남문루와 서로 다른 건물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日省錄』正祖 23)
정조16년 10월 3일
…(전략)…남장대 6칸은 안쪽 3자를 이건하여 단청을 고쳤습니다. 남문루 8칸은 들보 위에 회
를 바르고 문의 확쇠 1개를 새로 개비하였습니다. 서문루 8칸은 보수하고 기와를 덮었습니다.…
(후략)…
이 기록을 보면 남문루의 규모는 8칸으로 6칸 규모인 진남루(『華城志』 ①,『水原郡邑誌』 ①)와
24)
규모에서 명확하게 차이가 확인되는데, 조선시대 독산성의 보수기록 중 문루가 확장되었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서로 다른 건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6칸에 단청을 칠한 남
장대라는 건물이 기록되어 있는데, 『華城志』와 『水原郡邑誌』에 기록된 독산성 내 건물 중 6칸 규
모에 단청을 칠한 건물은 진남루가 유일하다. 또한 진남루가『日省錄』의 기록 2년전인 1790년(정
조 14) 보수되었다는 기록을 볼 때『日省錄』에 기록된 남장대는 진남루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된다.
종합해보면 진남루를 남문의 문루로 판단하게 된 기존 배경에 문제가 있으며 각종 문헌에서
도 진남루와 남문의 문루 별도로 인식하고 있고 특히, 위치와 용도, 규모가 상이 한 것을 볼 때
진남루와 남문의 문루는 서로 다른 건물로 판단된다. 따라서 앞으로 진남루와 남문의 문루를 동
일하게 보는 것은 지양해야 하며 기존의 인식을 고쳐나갈 필요성이 있다.
23) 『日省錄』 正祖
정조16년 10월 3일
…(전략)…南將臺 六間 向內三尺移建 改丹靑 南門樓 八間 樑上塗灰 門確金一箇新備 西門樓 八間 修補蓋瓦…(후략)…
24) 독산성의 보수에 관한 기록은 주5의 이용범 논문에 자세하게 정리되어 있다.
110 이용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