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5 - 오산시 역사문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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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비행장 지명유래
일제강점기 때 자동차를 시동하자면 으레 스타팅을 돌려야 했고, 비행기는 프로펠
러를 돌려주는 차가 있었으며, 그 차는 약 2m 길이 파이프가 앞에 매달고 있어 이
륙할 비행기 앞에 가서 파이프를 들어 프로펠러를 꼽고 시동을 한참한 뒤 비행기를
움직였다.
<오산비행장>에는 친일파로 분류되는 화신백화점 사장 박흥식과 관계되어있는데,
박흥식이 건설하여 조선총독부에 헌납한 것에 연유한다.
서울 여의도에는 일본군의 비행장이 생겼고, 오산에 두 번째, 김포에 세 번째로 건
설되었으나 오산과 김포에는 일회용 비행기만 배치시켜놓고 나무로 위장하였고, 시
동차만 배치시켰으며, 경비병을 배치해 보초를 철저히 서게 하였다.
김포비행장은 일본국 정부 공사로 일제가 작업인원을 동원해서 근처 산 흙을 운반
해 넓은 논바닥을 메웠으나, <오산비행장>은 박흥식이 사비를 들여 직접 건설한 비
행장으로 공사 완료와 동시에 조선총독에게 헌납하고 표창을 받기도 했다.
『오산시사』에 <오산비행장>이 보이는 것은 광복이 된 1945년에 일제강점기 때
경비행기 활주로로 사용하던 오산천둔치(지금의 시민회관과 공설운동장 자리)에서
조국광복 경축 제1회 전국축구대회를 개최했다는 내용이 보인다.
해방 직후 미군은 김포비행장을 사용하다가 <오산비행장>도 사용하게 되었는데,
1950년 6.25 한국전쟁까지 발발하자 재개수하며 미군의 비행장 역할을 톡톡히 하
였다. 이후 1952년 평택시 송탄지역에 새로 건설하여 갔고 명칭은 그대로 사용되었
다.
<오산비행장>은 현재< K-55오산에어베이스>로 불리며 평택시 송탄지역에 존재한
다. 송탄의 <K-55에어베이스>는 1952년경에 평택군 송탄면 신장리와 서탄면 적봉
리 일대에 건설되었다. 이곳에는 본래 신장리, 원적봉, 야리, 신야리, 장등리 긴등과
같은 자연마을이 있었는데, 미군기지가 건설되면서 이곳에 살던 주민들은 원적봉
마을과 긴등마을은 마을 뒤편의 산등성이로 집단 이주하였고, 야리, 신야리같은 마
을 주민들은 신장동 구장터, 제역동이나 서탄면 황구지리, 금각 2리로 분산 이주하
였다.
현재도 오산이라는 비행장 이름을 미국이 고수하는 것은 오산시나 평택시의 시민
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존속하고 있는데, 이유는 전 세계의 미국 군사지도를 바꾸고
군사행정 문서의 변경에 많은 돈이 들며, 미군과 미국 사람에게 친근하고 발음하기
가 좋아 변경 없이 사용을 고수한다고 한다. 오산시민들은 오산에 존재치 않는 오
산비행장의 ‘오산’ 명칭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평택시민들은 평
택시 권내에 없는 ‘오산’의 명칭이 평택오산비행장에 남아 있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못내 아쉬워한다. 현재 『평택시사』에서는 오산비행장의 ‘오산’ 명칭이 오산시에서
밝히는 오산시의 오산비행장이 평택시의 오산비행장으로 이전되었다는 유래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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