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0 - 오산시 역사문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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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충청주도에  속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양재도,  영화도에  속하였다.  오늘날  원동

                  에  있었으며,  구체적으로  역말저수지  동쪽  편  역말약수터  부근에  있었다.  지금은  청
                  호역의  흔적은  없고,  한때  역의  흔적은  지명에만  남아  역말이라는  마을  이름으로
                  남아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일제시대  청호역은  오미역,  성호역으로도  불리웠다는
                  데,  병점(떡점거리)역마로부터  이곳  오미역마(청호역)를  거쳐  진위역마(진위면  견산
                  리)로  향하였다고  한다.  기록에는  당진  피(皮)씨  네가  대대로  역마를  먹였다고  하는

                  데,  역말저수지에는  당진  피씨네  조상이  한강에서  역류하는  돌  2개를  안고  와서  당
                  신(堂神)으로  모셨다는  당집이  있다.  돌  크기는  각각  약  30cm  높이로서  자그마한
                  할아버지  선돌  모양이라고  하는데  그  당시    당집이  허물어져  무너진  기와지붕  밑에
                  깔려  있었다고  한다.  당제는  음력  10월  초승에  행하였고,  최근에는  당제는  지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고대로부터  우리나라  육로  교통의  중심지역인  오산.  1905년  경부철도  개설

                  때에도  오산역이  함께  개설되었고,  현대에도  경부고속국도의  최초  개설  구간(서울-
                  수원-오산)으로  톨게이트가  함께  설치되었으며,  그  톨게이트의  위치가  청호역  자리
                  근접  인근이다.  현재  오산의  교통은  전철,  기차,  버스  노선이  필수적으로  경유해야
                  하는    한마디로  ‘사통팔달’  이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고장이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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