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 - 오산시 역사문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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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웅굿을  하고  있는  이용우  선생의  제자,  생전의  오수복  선생





                    그러나  경기도당굿의  화랭이  집단은  원래  해방  전까지만  해도  그  굿에는  먼저  남

                  자무당인  화랭이들이  줄을  타고,  여기에는  기생의  소리와  춤들이  곁들여져서  축제
                  분위기가  더  강한  것이었다.  굿  내용에도  많은  화랭이들이  참여해서  재담과  덕담에
                  소리와  재주놀이들을  벌이고  축제분위기를  돋우며  전통적인  연희  종목을  보유했으
                  나,  오늘날  남아  있는  종목은  그  일부분에  지나지  않고,  그  가운데서도  광대  소리만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와  동해안  일대의  무속인들은  대부분  세습무였고,  그들을
                  화랭이,  산무  등으로  부른다는  것은  앞에서도  이야기  했다.  세습무는  굿을  해주고
                  봄가을로  약간의  곡식과  돈을  받기도  하지만  늘  곤궁한  삶이였다.  대개  여자는  굿
                  을  하고,  남자는  화랭이가  되어  전체적인  굿의  진행을  도왔다.
                    오산에  경기재인청이라는  전국  무속인의  단결체가  있었음을  잘  기억해야  하겠다.

                  경기재인청(才人廳)은  춤과  연희,  무악을  하는  전통  무속인을  총괄하는  단체이다.
                  오산은  바로  경기도당굿의  시원이며,  성지이다.
                    1920년대  일제가  강제로  폐청시킬  당시  회원이  4만여  명이나  되는  거대한  조직이
                  었다고  한다.  당시  재인청은  경기도  수원시  성호면  부산리  웃말에  있었는데,  현재도
                  경기도당굿의  완전한  복원을  위하여  이곳  오산의  부산동으로  옮겨와  경기도당굿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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