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 - 오산시 역사문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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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오산청학동유적  등  고인돌과  함께  청동기시대의  생활  유적이  발굴되어  오산

                  은  선사시대에도  사람이  살았다는  것이  유물로  확인된  것이다.
                    초기  철기시대의  유물로는  가장동유적에서  주거지  1기,  구상유구  2기  및  수혈  9기
                  가  각각  조사되었다.  이들  세  종류의  유구들에서  두형토기  및  우각형파수가  공통적
                  으로  출토되어,  이  지역에도  초기  철기시대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
                  다.

                    최근  다수의  분묘들이  수청동에서  발굴되었는데  적어도  원삼국시대  후기에는  이
                  일대에  중요한  거점  세력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오산  지역은  다른  경기도  남부지역이나  충청도,  전라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낙랑이  설치된  기원전  108년부터  기원  후  2세기까지의  유적이  아직  제대로  발굴되
                  고  있지  않고  있으며,  앞의  수청동  유적의  분묘는  모두  3세기  이후의  것들이다.
                    삼국시대의  유물을  보도록  하자.  한반도  중부의  마한  사회에서는  다양한  묘제가

                  사용되는데  주구를  갖춘  목관묘와  목곽묘(주구토광묘)가  발달한  지역은  천안과  아
                  산을  중심으로  한  곡교천  유역,  청주  중심의  미호천  유역,  그리고  공주-부여-대전
                  일대의  정안천  및  갑천  유역이다.  종전에는  이러한  묘제의  북한계를  천안이나  안성
                  일대로  보면서  안성천  유역을  주목하였지만  오산  수청동유적의  발견으로  인해  이러

                  한  기존  견해는  수정되었다.  연이어  용인  상갈동과  마북동에서도  이러한  분묘가  확
                  인됨으로써  현재  그  북한계는  용인-오산  일대로  북상하였다.  분묘의  형태만을  고려
                  할  때,  오산지역은  천안-청주를  중심으로  하는  주구목관(곽)묘  분포권의  일원이었
                  음을  알  수  있다.  수청동의  주구는  말발굽,  혹은  좌우가  긴  역U자형의  평면을  띠는
                  것이  대부분이다.  중간이  끊겨서  주구  외부와  내부를  연결하는  육교부의  기능을  갖
                  춘  것과  낮은  쪽을  제외하고  삼면을  완전히  주구로  돌린  부류가  공존한다.  묘광의

                  방향을  보면  수청동의  경우  대부분  등고선과  직교하게  묘광을  굴착하였는데,  주구
                  의  평면  형태와  함께  이  유적의  특징적인  부분이다.  수청동유적의  무덤들이  조성된
                  시기는  3~5세기경으로  추정되는데  구조적  변화  양상이  그리  뚜렷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수청동  유적을  남긴  세력은  오산은  물론이고  안성,  용인,  화성    등  경기  남
                  부에서  성장하던  마한  정치체  중  비교적  높은  위상을  지닌  세력임을  알  수  있다.  5
                  세기  대에도  계속되는  고분의  연속적인  축조는  이  정치체의  지속  기간이  길었음을
                  보여준다.  수청동고분군을  축조한  집단은  서울의  백제국  중심의  제국연합보다는  오
                  히려  천안-청주  지역의  제국연합과  문화적으로  동질적이다.  분묘  유물은  백제  중앙
                  에서  만들어지거나,  혹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  중앙을  거쳐  수청동고분군에  부

                  장된  물품도  있고,  이것과는  달리  백제  중앙의  영향을  띠고  있지만  재지에서  제작
                  된  것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직구단경호이다.
                    고구려  고분은  봉토를  크게  쌓지  않는  경우가  많아  육안으로  발견하기  어렵지  않
                  기  때문에  쉽게  알  수  있는데,  아직  오산  일대에서  고구려  고분이  발견된  예는  없

                  다.  하지만  성남-용인-화성과  충주를  잇는  범위에서  고구려  고분이  발견되었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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