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1 - 오산시 역사문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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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재  묘(李商載墓)







                   이상재  묘는  오산시  서동  산  66-1,  부평  이씨  선영에  소재한다.  오산시  향토문화유적  4
                  호로 지정되어  있다. 연대는  조선 후기로 추정되며, 규모와 수량  크기는 다음과 같다.
                   1기
                     •  상석(가로 133×세로 83.5×높이 39.5㎝)
                     •  향로(가로 33×세로 25.5×높이 52㎝)
                     •  혼유석(가로 72×세로30㎝)
                     •  망주석  한  쌍(높이 36×폭 36㎝)
                     •  묘표(1977년  제작),  시비(詩碑,  1996년  제작)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부평(富平)이다.  인천광역시  남구  용현동  출생으로  자는  문
                  거(文擧)이며, 옥(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병조정랑을 지낸 계록(繼祿)이고,  아버지는 광해군
                  과  동서지간이  되는  군수  덕일(德一)이며,  어머니는  유자신(柳自新)의  딸이다.  사복시  첨정  이
                  인후의 딸을  맞이하여 혼인하였다.

                    1630년(인조  8)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633년(인조  11)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등용되어 저작에 올랐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나 중국의  사신  학사  강왈광
                  (姜曰廣)이  크게  존경하여 시문을  받아갔는데,  이  시가  『황화집(皇華集)』-조선시대  명나라
                  의 사신과  조선의 원접사(遠接使)가  서로 주고받은 시를  모은 책-에 실려  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는  1636년(인조  14)에  금정도찰방이  되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충청도  관찰사  정세규(鄭世規)의  종사관으로  출정하여  인조가  피란한  남한산성을 방어하기
                  위해  진군하다  용인의  험천(險川:지금의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에서  적의  협공을  받아  분전했으
                  나  전사하였다.  사후에  홍문관  교리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  수찬관에  추증되었다.  충신  이
                  상재 행장은  공의 외손인 개성유수  송징은(宋徵殷)이 지었다.
                      위  묘는  오산시  서동  산  66-1번지  일원의  남서사면에  위치해  있고,  부평  이씨  문중선영

                  에  위치해  있다.  묘소  앞  좌측에  선생의  충성을  기린  향나무가  심어져  있으며 묘역은 봉분
                  과 함께 상석, 향로석, 혼유석, 망주석 한 쌍, 묘표, 시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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