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3 - 오산시 역사문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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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린효자정려문




                      최정린(1760~1799)선생의  효자각(孝子閣)에는  1831년(순조21)에  내린  ‘상지이십

                  이년  효자  증  조봉대부  동몽교관  최공정린지문  을유오월  일  명정(上之二十二年  孝
                  子  贈朝奉大夫童蒙敎官崔公廷麟之門  乙酉五月  日  命旌)’  이라는  정려문이  봉안돼
                  있다.
                    효자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한식골기와  맞배지붕으로  된  건물이다.




























                                                 최정린효자정려각과  정려문


                    선생의  본관은  수성(隋城)으로  자(字)는  성서,  호는  탑서재(塔西齋)이다.  수성  최
                  씨는  고려  때  수성백  최영규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공을
                  많이  세웠다.  선생은  1760년(영조36)  11월  11일  오산시  두곡  1동(당시  수원부  초
                  평면  두곡동)  자택에서  태어났다.  최정린  선생의  부친  최진복(崔進福)은  자질과  품
                  격이  단단하고  깔끔하여  세속에  매이지  않는  선비였다고  한다.  모친은  밀양  박씨

                  로  천성이  어질고  후덕하여  시부모를  섬김에  효를  다하였고,  친척들에게는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였으며  손재주도  정교하고  재능이  많았던  부인으로  알려져  있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효성스러워  맛있는  음식을  보면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꼭  부
                  모님께  공양하였으며  늘  할머니를  모시고  밥을  먹으면서  할머님이  남긴  반찬을  주

                  시면  반드시  이를  어머님께  갖다드렸으며  어머니께서  혹시  되돌려  주시면  굳이  사
                  양하여  말하기를  “저는  이미  많이  먹었습니다.”라고  하였다  한다.  집안  살림은  청
                  빈하였고  어머니께서  시어머니를  정성껏  봉양하는  것을  보고  본받았으며  스스로
                  음식을  만들어  어머니께  드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어머니께서  “너는  어찌하여  배
                  고픈  것을  참고  나를  공양하느냐?”  고  말씀하시면  대하여  말하기를  “어머니  역시
                  어찌하여  배고프신  것을  참으시고  할머니를  공양하십니까?"  하고  말하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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