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4 - 오산시 역사문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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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나이  10세에  부친께서  칼에  엄지손가락을  다쳤는데  백약이  무효함으로  선

                  생이  사람들에게  널리  수소문하여  무슨  좋은  약이  있는가하고    물은  즉,  어느  사
                  람이  말하기를  혈갈(血竭)이  사람의  피를  말려  만든  것이리라  함으로  선생이  방으
                  로  몰래  들어가  허벅다리를  찔러  피를  내어서  이를  불에  말려  다친  곳에  붙여  드
                  린  뒤에  효험이  있어  완치되었다고  한다.  부친께서는  그  뒤에  자세한  내용을  들으
                  시고  늘  그  손가락을  들고  이것은  우리  아이의  효성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말하였

                  다고  한다.
                    경자년  가을에  어머니께서  분만으로  인한  혈허병(血虛病)을  앓게  되어  매우  어려
                  운  지경에  이르렀는데  선생께서는  목욕하고  신에게  기도를  드림은  물론  하늘을  향
                  해  울면서  호소하기도  하였다.  어느  의원이  말하기를  가물치가  제일  좋다고  하나
                  때마침  깊은  겨울이라  물은  단단히  얼어붙었으나  선생은  곧  석천(石川)의  옆으로
                  가서  얼음을  깨니  가물치가  틈에서  뛰어나와  이를  얻어다가  어머니께  달여  드린

                  후  과연  효험이  있어  완치되었다.  또한  부친께서는  평소  해소병이  있어  기침,  가래
                  가  심할  때가  있었으므로  선생은  옆에  모시고  있다가  많이  가라앉은  후에라야  물
                  러났으며  밤마다  이렇게  하였다고  한다.
                    더욱이  부모에게  순응하고  말씀에는  반드시  복종하였고,  평소  우의를  지키며  일

                  찍이  엄격하지  아니한  것이  없어  양친  곁에  있으면  유순하고  온화한  몸가짐을  지
                  켰으며  어른을  모시는  예와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예절  등을  실천하였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글을  좋아하여  공부를  시작했을  때  남의  권유나  독촉을  아랑
                  곳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였다고  한다.  그  향학(向學)의  열은  천성(天
                  性)과  같았으며  또한  재능이  뛰어나  불과  수년  만에  능히  문리(文理)를  깨우쳤다고
                  한다.  선생을  가르친  스승은  심히  이를  기특히  생각하여  큰  학자가  될  것으로  기

                  대하였다고  한다.
                    친척  중에  궁색하고  의탁할  곳이  없는  사람에게는  논과  집을  사주어  살게  했으며
                  일찍이  부모를  잃고  결혼도  못한  사람에게는  결혼을  주선해  주며,  또한  돌볼  사람
                  이  없어  살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양식을  도와주는  등  성심껏  실행함에  많은  사람

                  이  감동하였으며  인근  인척,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존경하고  공경하였다.
                    형제  7인이  한  집에  살면서도  서로  화목하였음은  모두  그의  화도력(化導力)의  결
                  과였다.
                    조상의  제삿날에는  깨끗이  집안  모두를  청소하고  제기를  닦으며  모든  준비를  손
                  수  하였으며,  매일  일찍  일어나  부모님께  문안  인사를  드리며  물러나서는  여러  형
                  제들을  불러  글을  가르치고  도박을  하지  않도록  타일렀다.  또한,  검소한  생활로  일

                  관했으며  매년  초하루에는  집안  식구들을  불러  모아  부모님께  절을  하며  여러  동
                  생들에게  예를  다할  것을  타일렀다고  한다.  혹여  쟁송사건이  있게  되면  선생에게
                  가서  먼저  판별해  달라고  하여  관에  가지  아니하고  스스로  물러나는  사람도  있으
                  며,  학식  있는  사람들은  공경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지극히  가난하여  부모님  돌아간  후에  염습이나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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