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9 - 오산시사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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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삼미 1동 207
생활환경
■ 삼미(마을)
원래는 동네 주변에 아름다운 소나무가 많아서 소나무골, 즉 송리(松里)라 불렸다. 조선 정조 임금 / 지명유래
이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를 양주 배봉산에서 화산(태안, 현 융릉)으로 천봉할 때 행차하여 경기관
찰사에게 마을 이름을 물었는데 ‘문시면 송리’라고 아뢰니, 정조 임금이 화산에서 마을 쪽을 바라보며
“문시에는 오동나무, 죽미에는 대나무, 삼미에는 소나무가 아름답고 많으니 삼미(三美)라 부르라.”라
고 하여 삼미가 되었다 한다. 그중 마을 안쪽을 내삼미, 바깥쪽을 외삼미라 부르게 되었는데, 『수원
부읍지』에 의하면 1789년(정조 13)까지는 삼미면 또는 삼미곡면으로 기록하고 있어 삼미가 아주 오랜
옛날에는 하나의 면(面)이었음을 알 수 있다.
■ 내삼미(마을)
안삼미, 안삼미실, 안삼미곡, 안삼며곡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으며, 모두가 삼미의 안쪽 마을이라
는 뜻이다. 내삼미 지역은 경주 김씨와 용인 이씨의 세거지로 이들이 정착하여 살면서 마을을 형성한
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 오미(마을)
삼미와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것 다섯 가지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현재의 오
산시 전체가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삼미의 원동(園洞)에는 아름다운 동산에 꽃밭이 아름답고, 초평
에는 석양에 아름다운 물을 가리켜 부른 것이라고 전한다. 예전에 원동(지금의 대원동) 일대에는 동
산에 꽃이 만발하여 보기가 좋았고, 초평으로는 지금의 오산천에 배가 들어올 정도로 물이 많아 석양
에 바라보는 초평 쪽 오산천의 물이 무척 아름다워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 큰말(마을)
내삼미 1동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 양짓말(마을)
내삼미 1동의 북쪽 반달산 밑의 마을로 양지바른 곳에 위치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며 큰말의 북쪽
에 있어 웃말이라고도 부른다.
■ 망굴(마을)
양짓말 너머의 마을로 지금은 없어졌으나 예전에는 맹(盟)씨와 마(馬)씨가 모여 살아 붙여진 이름
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