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3 - 오산시 역사문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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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4년)부터 공이 벼슬을 사직할 때까지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유지하여 왔으니
영왕이 공을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이렇게 하여 공이 향리인 오산 당촌으
로 낙향하여 향리에서 서당을 운영하며 어린 학동들을 가르치고 있을 때인 1907년
(순종 원년) 12월 영왕의 나이 11세 때 일본의 볼모(대외적으로는 일본 유학)로 끌
려가게 되었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일본행에 영왕은 경부선 기차로 부산으로 내
려가다 오산에 살고 있는 스승을 마지막으로 뵙고자 미리 기별을 하니 당시 수원군
에서는 인력거를 보내 공을 오산역으로 모셨다. 1905년 오산역이 생긴 이래 처음으
로 황태자가 기차를 세우고 내리니 인근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고 한다. 영왕은
스승인 공의 손을 꼭 잡고 눈물만 흘렸으며 스승인 공 역시 나라의 힘없음을 한탄
할 뿐 말문을 열지 못하여 안타까움만 남기고 영왕은 일본으로 떠났던 것이다. 그
후에도 영왕이 조국에 다니러 오면 오고 갈 때마다 오산역에서 공을 만나고 가니
조그마한 면소재지의 작은 역에 황실의 전용 열차가 정차하니, 온 면내가 소동이
일어나곤 했다. 제자인 황태자와 스승의 아름다운 만남이 오산역에서 일어났던 것
이다.”
장승백이 (거리)
현재의 고속도로 인터체인지 근처로 예전에는 이곳에 장승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
며 장승이 있는 근처에 서낭당이 있어 아낙들이 치성을 드리기도 하였다한다.
절골 약수터(터)
원동약수터라고도 하며 원동저수지에서 사후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있는 약수터
로 예전에 절이 있는 곳의 약수터라 붙여진 이름이며, 현재도 많은 오산 시민이 이
용하는 약수터이다.
가마미고개(고개)
원4동에서 부산동 큰말로 넘어가는 고개다. 옛날에는 고개 입구에 상여집이 있어
타 마을에 살던 사람들은 그 고개를 무서워하였다. 고속도로 위로 고가도로가 설치
되어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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