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7 - 오산시 역사문화 이야기
P. 67
았으며, 다만 후손들이 서원지에 사당을 세워 영정을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왔다. 그
러나 이러한 상황에 남북이 분단까지 됨으로 인해 남한에 사는 후손들은 북한에 있
는 사당에 찾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최충선생의 사당 영정각 측면
1985년 최충 탄신 1,000주년을 맞아 남한 지역 해주최씨 후손들이 새로운 문헌서
원 건립을 추진한다. 선생의 14세손 최만리의 증손자인 최선의 묘소가 있는 종산이
오산시에 있고, 지근거리인 성환에 국보 제7호 최충의 비문이 새겨진 사적비 봉선
홍경사비갈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고, 인접 안성시에는 선생을 봉향하고 있던 문
헌서원 등이 있다. 현재 남한에는 최충을 모신 서원, 홍주의 노동서원, 강진의 명곡
서원이 더 있긴 하지만, 본거가 되는 곳은 해주의 문헌서원이므로, 여러모로 해주의
문헌서원을 대신할 수 있는 곳으로, 오산이 입지라 생각하여 이곳에 오산문헌서원
을 건립하게 된 것이다.
오산문헌서원 전경. 현재는 영정각만 남아 있다.
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