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9 - 오산시 역사문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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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삼미 용인 이씨 집안의 전설
옛날 용인이씨 집안에 조선시대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분이 계
신데, 어느 날 역학지사(易學志士)선생이 마을을 지나다 들러 집안에 장사가 날 것
이라고 하더니, 때마침 생남하였는데 이 아이가 날 때부터 이가 났고, 겨드랑이 밑
에 날갯죽지가 돋쳤으며 눈에서는 독특한 광채가 빛을 발하였다. 집안 식구 모두가
기이하고 놀라 중추부사를 모시고 가족회의를 거듭하던 끝에, 마침내 이 아기를 죽
이기로 결정을 하였다. 처음에 아기를 잡아 뉘고 맷돌을 올려놓아도 죽지를 않아서
방치돌을 오려 놓으니 아기가 말을 하기를 ‘왜 나를 죽이려 하십니까?’하고 물으니
‘너를 살려두면 삼대가 멸문하는 역적 집안으로 몰리니 어쩔 수 없다’고 한즉 ‘내가
살아도 역적은 안됩니다.’하니, ‘네가 죽어야 집안이 무사하다’고 하면서 죽으라고
이르니 ‘내가 죽어서 집안이 잘 되고 무사하다면 죽겠는데, 그냥은 절대로 죽지 않
으니 저를 죽이려면 날갯죽지를 잡아 뽑아야 죽을 것입니다.’라고 하여 날갯죽지를
뽑으니 갑자기 천지가 진동하면서, 투구봉과 금반향지간의 산이 갈라지면서, 용마
(龍馬)가 어흥 소리를 내며 달려 나와 동탄 구산(龜山)을 딛고 용인쪽으로 날아갔다
고 하는 전설이 전한다.
이 전설은 후에 기술될 애기바위 전설의 크게 될 성 부른 아기들의 이야기와 같은
계열의 전설이다. 크게 성공하기를(큰 인물)바라는 집안의 바람과 시기하는 외압과
보존하려는 가문의 치열한 삶의 이야기이다. 현재에도 적용해 볼 수 있겠다.
★ 서랑(徐娘)의 전설
벌음동에는 약 360여 년 전부터 이천(利川)서(徐)씨가 집성을 이루며 살고 있다.
서씨 문중에서 전설같이 전해오는 애달픈 이야기가 있다. 때는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난 때의 일이다. 여진족인 후금(後金)의 군대가 조선을 침범하여 우리의 군사는
중과부적으로 남으로 밀렸고 마침내 인조(仁祖) 임금은 남한산성으로 몽진까지 하
게 이르렀고, 후금군에게 60여일을 항거했지만 결국 임금은 후금의 장수 용골대에
게 신하의 예로써 절하고 항복해야만 했던 치욕을 당하던 때이다.
벌음동 마을로 오랑캐(여진족)들이 쳐들어와 약탈을 일삼고 부녀자에게 행패를 부
리며 살생을 저질렀다. 이때에 벌음동에서 살던 서희장군의 후손인 서대감[徐鳳鶴
公]이 부원수(部元帥)로 여진족과 싸우다 전사를 하게 되었다. 이 서봉학공의 슬하
에는 두 아들과 10대 후반의 아리따운 서랑(徐娘)이란 처녀가 있었다. 두 아들도
여진족과 싸우기 위하여 출전했고 집안에는 부인과 딸인 서랑만이 있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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