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5 - 오산문화총서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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른색, 백설기-흰색, 무지개떡-홍색의 떡이다.
새수원으로 읍치를 옮기고 떡점거리가 처음 생겼을 때는 남쪽으로 20리가면 구수원(오산)이
요, 북쪽으로 20리가면 새수원(현재 수원)이니 두 읍을 아우르는 동리라 하여 아우를 병(幷)자
를 썼다고도 전한다.
1941년 일제가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자 친일파 박흥식은 재빠르게 오산비행장 공사를 착공
하였고 전국에서 많은 일꾼이 몰리게 되었으며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한다. 한 가지 문
제는 일꾼들의 간식이었다. 중요간부들은 왜인이었고, 배급 쌀을 지급할 때라 새참(간식)거리
가 아무 것도 없어 작업진도가 지지부진하였다. 이 상황을 알아챈 떡점골 어떤 한 사람이 농촌
에 가서 찹쌀을 사다 인절미를 만들어 나무자배기에 담아 작업장 근처로 가서 팔기 시작하였
다. 돈 있는 사람들은 돈을 내어주면 칼로 가격만큼 큰 덩어리를 썰어주는 방법으로 팔았는데
불티날 듯 아주 잘 팔리자 날이 갈수록 떡장수가 늘어났다. 공사가 완료되자 박흥식은 조선총
독부에 바치고 표창을 받았다고 하는 씁씁한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참고문헌
● 김동복, 『옛수원 새수원』, 이화출판사, 2011.
ⅩⅠ. 4대 전통의 오산할머니집
오산시의 맛집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명성이 자자했던 설렁탕집(소머리국밥집)인 오산할머
니집은 문을 연지 70년이 넘는 식당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옛날 질박한 뚝배기에 뽀얗게 울
어난 장터의 국밥은 바로 우리 전통시장인 5일장의 대표적 먹거리였다. 오산장(烏山場)에 장
보러 나온 이웃 마을의 주민들과 그리고 오산의 주민들이 5일에 한번 나와 물건을 흥정하고
사며, 장에 나온 김에 뜨끈한 국밥 한 그릇에 막걸리 한잔 들이키면 허기진 속을 채우고 입담
정겨운 오산 욕쟁이 할머니의 묵직한 욕 한 사발 덤으로 마실라치면 어느덧 시골집의 멍석에
앉아 정겹게 농치며 먹고 마시던 영락없는 시골 잔치 집에서 먹던 국밥인 것이었다.
오산장이 처음 문헌에 나타난 것은 1753년 이중환이 쓴 『택리지(擇里志)』에 나타나는 오산장
(鰲山場)이다. 이 택리지에 오산장이 3일과 8일에 열린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문헌상 이 기록이
새롭게 기억하고, 기록되어야 할 오산이야기(Ⅱ) 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