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5 - 오산문화총서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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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35년 7월 6일.
                        오산시내전화


                         (오산) 날로 발전되어가는 경기도 오산 시내에 유지 제씨가 활동한 경과 시내전화가 완성되
                        어 6일부터 개통하기로 되었다 한다.



                        동아일보 1935년 8월 13일.

                        오산체육회 창립, 8월 18일에

                         (오산) 지난 10일 오후 8시에 수원군 오산 우희영 집에서 오산체육회 창립대회를 열고 임시
                        의장에 공석환씨가 피선되어 의사를 원만히 진행하고 다음과 같이 임원을 선정하고 동 11시경
                        에 무사히 폐회하였다 한다.

                         회장 박성덕, 부회장 홍정헌, 간사 공석환, 한동수, 감사 강우일, 이인호, 운동부장, 김오룡,
                        서기 겸 회계 김경기



                        동아일보 1940년 3월 8일.

                        초등교의 입학난, 수용아동은 반분에도 미급

                         (오산) 수원군 성호공립심상소학교 금년 봄 입학 지원 아동 수는 남녀 600명이나 되는데 수
                        용력은 남녀 합 250명이라 한다. 나머지 350여 명은 갈 곳이 없이 방황할 처지에 놓여있다.
                        12,000의 인구를 포용한 성호면에 교육기관이 이와 같이 빈약함은 면민이 다 같이 유감으로

                        여기거니와 해마다 입학난은 심각해 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소학교 증설은 급무 중에도 급
                        무가 아닐 수 없다. 이점에 대하여 당국은 물론 일반 유지들도 협력하여 초등교육의 입학난을
                        하루속히 없애도록 힘써야 할 것은 통절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동아일보 1940년 5월 7일.

                        극빈아동에게, 학자를 보조

                         (오산) 원적을 수원군 성호면 세교리에 두고 현재 경성 황금정에서 중앙전기공작소를 경영

                        하는 원제완(25세)군은 고향에 있는 사립 광성학원에 찾아와서 학동 중 극빈한 생활로 인하여
                        정학 처지에 있는 아동을 조사하여 당장 면학치 못할 아동 열 명의 학자금을 담당하고 상경하
                        여 신학기분부터 금10원을 학원으로 보내고 “앞으로도 극빈한 생활로 인하여 정학을 당하게




                                                              일제강점기 신문과 잡지 기사로 보는 오산인의 삶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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