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2 - 오산문화총서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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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32년 9월 7일.
오산각희대회
(오산) 수원군 오산시 오산상인 일동 주최로 오산 시구 개정 완성 축하를 위하여 3일과 8일
양일간 오산시장에서 각희대회를 개최한다는데 다수히 참가하기를 바란다 하며 시일과 상품
은 다음과 같다.
상품 1등 황우 1두, 2등 소우 1두, 3등 안동포 1필 기타, 4등 은망사 기타, 5등 일용품 다수.
동아일보 1933년 3월 2일.
수원군 궐리사 중건
오산 1기자
전조선 사림 일반은 거의 다 짐작될 줄 안다. 이곳은 공자의 진상을 봉안하고 후손인 공씨와
각 사림의 성의로 춘추석제를 지내오는 터이다. 전조선 각 지방에 공자 향교가 없는 곳이 없으
나 이 궐리사만은 보관물을 참고 하건데 공자의 행적도를 목각하여 보관하여 쌓은 것이 백여
건이요, 궐리지라는 책을 많이 만들어서 유림과 본손들이 각각 중요품으로 보존한다고 한다.
5)
그 책에서 참고하여보면 정묘조 17년 임자에 정묘조 특명하에 궐리사를 전남 노성 과 수원 옛
지명 구정촌에 설시했던 것인데, 그때는 위패만 봉안하였고, 유래에 폐허가 되었다가 고종 갑
오년 춘3월에 유림 심근암씨와 서야감씨 두 분이 폐허에 단을 모으고 강당을 건축하고 경학
을 강론하며 춘추제향을 지내오다가 고종 신미년에 김상현씨가 중국 사신으로 가서 공자행적
에 진상을 배래하였다고 한다. 그 성상의 진가를 알게 됨은 중국 당송시에 인물화가로 명성이
높던 오도자필이라는 증인이 희미하게 남았고, 석비에 각화를 박아온 것 인만큼 연구세심하여
좀이 나고 완폐할 지경이 되어 책자에 넣어 보관할 뿐이라 한다. 향촌에 수간 모옥일망정 경학
원이니 명륜당이니 성묘를 건설함이 현대에 별반 새로운 사업은 될지 모르나 시소위 문맹 퇴
치를 부르는 등사에도 해는 없을 줄 안다. 그러나 고적 보존으로 본대도 대대 계속적으로 보존
숭배하는 궐리사만은 호풍양속이며 농후한 고풍이 남아서 자손신양도 특히 다른 점이 많으나
성묘 재임에도 노쇄하고 빈한한 관계로 이만한 처지에 유지난을 당하게된바 퇴락한 묘당과 강
당을 중건키로 재임일동과 전조선을 통하여 일반 유림에 성원을 모집하는 한편에 완폐한 성상
까지 중수하게 된다하니 일반 인사의 분발을 바란다.
5) 노성은 현재 충남에 속한다.
250 김종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