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2 - 오산문화총서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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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都盧尋橦), 도로장(都盧橦), 상간(上竿), 간희(竿戱), 장간희(長竿戱) 등의 용어를 사용
했으며 명나라 동월의 『조선부(朝鮮賦)』에서는 솟대타기를 섭독교(躡獨趫)라고 표현했다. 조
선 숙종대 간행된 『역어유해(譯語類解)』에서는 솟대타기를 상간, 연간(緣竿)이라 불렀다. 솟대
쟁이패 출신으로 남사당패의 일원이 되었던 송순갑(宋淳甲·1912~2001)의 증언에 따르면 솟
대쟁이패의 공연 종목은 풍물·땅재주·얼른·줄타기·병신굿·솟대타기 등의 여섯 가지였
다. 그 중 솟대타기는 조선 후기 쌍줄백이라고도 불렀는데, 높은 장대 위에 오늘날의 평행봉
너비의 2가닥 줄을 양편으로 장치하고 줄 위에서 물구나무서기, 두 손 걷기, 한 손 걷기, 고물
묻히기(줄 위를 빙글빙글 구르기) 등의 기예가 있었다고 한다. 쌍줄백이는 줄을 매는 장대도
다르고 줄에서 하는 기예도 다르다는 점에서 오늘날 줄타기와는 구별된다. 솟대타기의 줄 기
예가 쌍줄백이로 불린 이유는 솟대에 연결된 두 줄이 연희공간으로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쌍
줄백이와 쌍줄타기는 유사해 보이지만 다른 연희다. 첫째, 줄을 매고 있는 장대의 높이가 다
르다. 쌍줄백이의 경우 한쪽을 짧게 하여 연결된 줄이 솟대를 땅에 고정하는 역할도 수행하는
데 비해 쌍줄타기는 장대의 높이가 거의 비슷하다. 쌍줄백이는 솟대와 줄을 한 번에 묶어 연희
공간으로 삼기 때문에 장대가 하나지만 쌍줄타기는 평행한 쌍줄 위에서 연기하는 것이므로 줄
의 높이가 다르면 쌍줄타기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장대 꼭대기의 형태가 다르다. 쌍줄
타기는 장대 위에 도르래를 설치하여 기예에 따라 줄의 길이를 조절하게끔 했다. 장대 위에는
연희자가 올라갈 곳이 없다. 연희자가 기예를 펼칠 공간이 없는 셈이다. 그러나 쌍줄백이는 솟
대 꼭대기에 십자형이나 X자형 가로목을 설치해 그 위에서 물구나무서기와 같은 기예를 연행
한다. 즉 쌍줄백이는 솟대와 줄 모두에서 펼칠 수 있는 연희인데 반해 쌍줄타기는 양쪽 장대에
연결된 줄에서만 가능한 연희다. 셋째, 쌍줄백이에서는 악기연주가 가능하다. 현존하는 줄타
기 기예는 악기연주보다 줄의 반동을 이용한 체기와 재담에 주력한다. 그러나 쌍줄백이는 솟
대와 줄 모두에서 체기는 물론 악기를 연주하는 기예를 선보였다.
6) 발탈
한쪽 발에 탈(가면)을 씌워서 연희하는 예능. 1983년 이동안이 중요무형문화재 제79호로 처
음 지정됐다. 구전에 따르면 경기도 안성 지방의 남사당패가 행한 ‘꼭두각시놀음’이 변형돼 나
타나 주로 중부지방 일원에서 연희되었다고 하며, 또는 유랑예인들에게서 파생됐다고도 한다.
이것이 협률사의 공연을 거쳐 광무대와 가설극장(포장굿) 또는 창극단(唱劇團) 등으로 이어졌
다고 한다. 발탈의 전승계보는 남사당패에서 비롯된 김덕순·조갑철·박춘재·오명선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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