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4 - 오산문화총서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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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내쫓고 막내사위와 살았다고 한다. | 제보자 : 김지영
2. 신립장군의 지략
신립장군이 평택으로 가다가 날이 저물어 어느 집에서 하루저녁 자게 되었다. 그런데 그 집
은 형편이 어려워서 밥도 제대로 못 해먹는 어려운 집이었다. 집주인은 자기 집의 형편이 어려
우니 건너가면 큰 대갓집이 있으니 거기 가서 주무시라고 하였다.
그래서 신립장군은 그 대갓집을 찾아갔다. 대갓집엘 가서 집 주인에게 장기를 둘 줄 아느냐
물으니 조금 둔다고 했다. 그래 신립장군은 내기 장기를 두자고 말했다. 그렇게 하여 내기 장
기를 두어 신립장군이 이기게 되었다.
신립장군은 다른 제물은 필요 없고 박을 심을 수 있게 토지를 좀 빌려 달라고 했다. 내기 장
기에서 진 집주인은 신립장군에게 박을 심을 수 있는 토지를 빌려주기로 하였다. 그렇게 하여
신립장군은 수천 평의 땅에 박을 심었고 수천 통의 박을 거두어들였다. 그러고는 바가지를 만
들고 검은 칠을 하였다. 그런데 신립장군은 또 장정이 간신히 들 수 있을 정도로 무거운 철모
도 따로 수십 개를 만들었다. 그러고는 해변에다 그 철모를 놓아두었다.
그 때가 바로 왜놈들이 조선을 침략하기 위하여 준비를 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왜국(倭國)에
서는 조선을 치기 전에 조선의 형편을 염탐할 군사들을 미리 보내었다. 그렇게 하여 조선에 당
도한 왜군들이 평택 쪽의 해변을 통해 들어오는데 철모가 놓여있는 것이었다. 그래 한 번 철모
를 들어보려고 하니 너무나 무거워서 온힘을 다 써야 간신히 들 수 있을 정도로 무거웠다.
왜군이 생각하니 조선의 군사들은 얼마나 힘이 세기에 이렇게 무거운 철모를 쓸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그러한 철모가 수천 개 해변에 놓여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왜군은 지레 겁을 먹고는 염탐할 엄두도 못 내고 일본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 제보자 : 김지영
3. 도깨비와 허깨비
제보자가 말하는 도깨비와 허깨비는 다음과 같이 구별되었다.
옛날 대원아파트 자리가 산이었을 때는 매일 도깨비들이 나와서 놀았다. 뭘 하고 노는지는
모르지만 저녁을 먹고 산자락을 보면 퍼런 불이 왔다 갔다 하고, 번쩍 번쩍 하고 그랬다고 한
다. 그런데 이튿날 도깨비 놀던 자리를 보러 가면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도깨비가 곧 차돌
이었다는 말이다.
332 한민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