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6 - 오산문화총서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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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에 대한 특징적인 것은 규모와 여장에 대한 기록이다. 성곽의 규모에 대한 기록을 조선
시대부터 종합하면 <표4>과 같다.
<표4> 시대별 성곽의 규모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현재
둘레 1,010보 = 1,212m 500칸 = 910m 1,095m
높이 3장 = 9,90m 1칸 = 1,82m 약 2m
시대별 성곽의 규모를 보면 현재와 일제강점기의 규모는 비슷하나 조선시대 때 기록된 규모
와는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사용하던 척도와 그것을 환산하는데 대한
차이일 수도 있으나 기록을 통해 보면 독산성의 보수와도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1979
년부터 성곽에 대한 보수가 본격적으로 시작 되었다. 당시 성곽의 보수는 잔존하고 있는 성곽
의 형태를 기준으로 삼아서 진행되었는데, 복원된 성곽의 높이가 일제강점기 때 기록과 비슷
한 것으로 볼 때 기준이 되었던 잔존성곽은 조선시대 때의 완전한 형태의 성곽이 아닌 일제강
점기 고적조사 당시에 파손된 형태로 남아있던 성곽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파손된 성곽이 기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조선시대 때 지속적인 보수로 잘 관리되던 독산성
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관리가 되지 않아 성의 기능을 상실하였으며 성곽의 대부분이 파괴
되고 토사에 파묻히게 되는데 이러한 상태에서 6.25 전쟁으로 다시 파괴되고 그 상태로 1979
년 까지 이어졌으나, 성곽에 대한 조사 없이 보수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독산성에는 여장이 일부 복원되어 있는데 이는 1982년 기록에 ‘여장하부 지대석 일부
가 완연하게 잔존하고 외부에 강회몰탈 미장마감 흔적이 있다’라고 되어 있어 이를 기반으로
복원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인 1979년의 기록을 보면 ‘여장은 확인할 수 없다’는 상반된 기
록이 남아 있다.
여장에 대한 1979년과 1982년의 상반된 기록에 대해서는 도면이나 사진 자료가 많이 남아있
지 않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으나 1979년의 경우 성곽이 많이 파손되고 토사에 묻혀 있어
정확한 형태를 파악하기에는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1982년에는 이전의 보수 시에 성곽
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 1979년 보다 현황에 대해 보다 면밀하게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따
라서 여장에 대한 기록 차이는 현황에 대한 조사 여건의 차이라고 판단된다.
한편 독산성의 성곽은 지속적으로 잘못 복원되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러한 지적은 당
시 복원·보수 지침에 기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지침을 보면 ‘잔존하고 있는 성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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