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7 - 오산문화총서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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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시(天時)는 지리(地利)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人和)만 못하다.”
-≪맹자≫ 공손추
Ⅰ. 오산, 수원, 화성의 뿌리와 줄기는 하나다
오산과 화성과 수원은 한 고을이었다. 조선시대의 수원은 현재의 화성과 오산을 포함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경기도 북부의 양주 역시 조선시대에는 엄청나게 규모가 큰 양주도호부였
다. 세월이 흐르면서 고을 이름은 그대로 남았지만, 모습이 크게 달라진 곳이 적잖다. 근대화,
도시화를 거치면서 겪게 되는 부득이한 현상이다. 지역의 역사를 연구할 때도 현재를 준거로
수백 년 전의 과거를 상상해서 해석하면 안 된다.
그런 점에서 “화성시에 화성이 없고 수원시에 수원이 없다”는 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949년 8월에 행정구역 명칭을 제정할 당시 공무원들이 수원이 되어야 할 곳을 화성이라 하
고, 화성이라 불러야 할 곳을 수원이라 부르는 잘못이 벌어졌다. 조금만 깊이 생각했더라도 일
어나지 않았을 잘못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처럼 터무니없는 결정이 혼란을 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직까지 그 잘못을 고치지 않았다. 60여 년이 지난 현재 역사적 사실로 굳어진 까
닭에 바로잡기란 매우 어려워 보인다.
이처럼 100여 년 전만해도 오산, 수원, 화성의 역사와 문화의 뿌리와 줄기는 하나였다. 해방
후 도시화를 거치면서 수원은 화성과 분리되었고, 오산도 독립하여 세 개의 행정 구역으로 나
누어졌다. 문제는 이로 인해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자기고장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몇 년 전에 이러한 문제점을 깊이 인식한 세 도시의 시장과 국회의원, 지역 원
로들이 한 자리에 모여 ‘산수화’라는 협의체를 출범시켰다. 짐작하듯이 산수화는 오산의 산, 수
원의 수, 화성의 화를 조합해 만든 이름이다. 그 동안 산수화를 통해 세 도시를 하나로 통합하
는 방안을 여러 차례 논의했으나 이해가 엇갈려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세 도시의 역사와 문화가 하나라는 사실을 공감하고 상호 이해와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무향(武鄕)의 터전, 수원고읍성과 독산성 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