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2 - 오산문화총서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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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군의 피해를 가장 많이 본 지역이며 의병들의 활약 또한 활발했던 곳이다. 지리에 밝은 경기
                       도의 의병들은 왜군 주력이 북상한 후 지역에 남겨진 소규모의 왜군을 상대로 기습전과 유격

                       전을 벌여 보급로를 끊고, 후방을 교란했다. 그러나 전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593년 1월 8일, 조명연합군은 고니시 유키나가가 장악하고 있던 평양성을 탈환하는데 성공
                       했다. 평양성전투는 4만3천 명의 명군과 8천 명의 조선군이 연합작전을 벌여 승리한 전투이

                       다. 그러나 평양성 탈환에 성공한 직후 퇴각하는 왜군을 뒤쫓던 명군 총사령관 이여송 부대가
                       벽제관에서 왜군의 기습을 받아 대패하면서 명군은 왜군과 전투를 회피했다. 다행히 같은 달,
                       고양 행주산성에서 권율 장군이 2천3백의 군사로 3만의 최정예 왜군을 물리친 ‘행주대첩’을 거

                       두면서 전쟁의 양상을 바꾸었다. 행주대첩 이후 왜군이 한양에서 철수해 경상도 해안으로 후
                       퇴하여 성을 구축하고 장기전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의 전개과정을 날짜별로 기록한 <난중잡록>에 수원산성과 독산성을 언급하고 있
                       다. 1592년 7월에 “지난달 23일에 의병장을 따라 수원산성에 이르러 5일간을 머물렀다”는 구
                       절과 10월에 “전라감사 권율이 수원 독성에 있으면서”라는 구절이 보인다. 이처럼 수원고읍성

                       과 독산성은 권율 장군과 홍계남 장군이 활용하면서 선조를 대신해 분조(分朝)를 이끌며 전쟁
                       을 지휘하던 광해군도 주목하게 되었다.
                        흥미롭게도 <조선왕조실록>에는 ‘수원산성(水原山城)’이라는 표현이 네 차례나 나온다. 전후

                       사정을 통해 살펴보면 수원산성은 수원부의 독산성과 수원읍성을 가리키는 두 가지로 구분되
                       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무튼 독산성에 주둔하며 여러 차례 왜군을 물리친 권율 장군이 고양 행주산성에서 대첩을

                       이끌어내면서 독산성은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아울러 수원 출신의 의병장 홍계남 장군의
                       활약도 독산성의 존재를 널리 알리는데 기여했다. 영의정이자 체찰사로서 전쟁을 총지휘했던

                       유성룡도 독산성을 주목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수원고읍성에서 십리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독산성은 경기도 최고의 군사요새로 발전되었다.
                        왜군이 영남 해안으로 퇴각한 이후부터 수원고읍성과 독산성에서 군사훈련이 이루어졌다.

                       한양에서도 체찰사 유성룡이 창설한 훈련도감을 통해 사수(射手), 포수(砲手), 살수(殺手)라는
                       삼수군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훈련도감의 운영은 경기도 일대까지 영향을 끼쳤다. 수원고읍성

                       과 독산성에서도 삼수군을 육성하는 군사훈련이 진행된 것이다. 조정에서 독산성에 시험관을
                       파견해 무과를 열었던 것은 특기할만한 일이다. 한편 평안도와 황해도에서는 평안도 도체찰사
                       이원익이 서원과 향교에 ‘서검재(書劍齋)’라는 교육기관을 설치하고 군사를 모집하여 집단 훈

                       련인 진법과 사격 및 창검을 다루는 무예를 가르쳤다.




                       80  김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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