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5 - 오산문화 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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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VOL. 64  osan culture








                       는 와중에 시청에서 연락이 왔다. 내가 하고자 하                 전통이 전통에만 머문다면 죽은 것이다. 내가 조
                       는 일은 주민들의 도움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                 선시대에 인기 있던 맛난 술을 빚는다고 해서 누

                       라며 지금 함께 일하고 있는 분들을 소개 받게 되                 가 그 술을 찾아줄까? 지금은 조선시대도 아니고,
                       었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고, 기회였다. 목표가 공                사람들 입맛도 조선에 머물러 있지 않다. 중요한
                       유되고 마을을 위해 일하겠다는 동네 분들과 힘을                  것은 전통(주)이라고 하지만 누구도 완벽하게 재
                       모으니 속도는 더디지만 하나씩 하나씩 일의 진전                  현할 수 없고 검증도 어렵다. 나는 그저 그 전통이

                       을 이루었다.                                     라는 것을 나에게 맞게, 현재에 맞게 재해석하고
                                                                   싶고, 그것을 통해 동시대의 사람들과 공감하고
                       단순히 술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일을 하고자 시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나의 대답에 사람들이
                       작한 일은 아니다. 술에 대해 전문성을 갖추는 것                 조금씩 동의해 주고 있어서 기분 좋다.

                       은 기본이지만, 그 술과 함께하는 문화도 같이 보
                       여주고 싶었다. 술과 체험, 문화, 기행, 강연 등...             오산 유일의 양조장을 복원하자는 일념으로 모두
                       다양한 화두로 사람들의 마음에 비집고 들어갈 수                  가 한 마음이 되어 움직이며 많은 것들을 배웠다.
                       있는 여러 가지 아이템들이 있었고, 그 청사진은                  목전의 이익만을 좇았다면 시작도 못 했을 일을 ‘내

                       처음엔 내 머리 속에만 존재했다. 주변에서 함께                  가 나고 자란 곳, 우리 동네!’를 살리기 위해 오매장
                       술을 공부하는 분들조차도 격려를 하시는 분, 말                  터 토박이 분들이 의기투합해 해 나갔다. 나 또한
                       리시는 분, 결사 반대 하시는 분등... 여러 부류였               오산에 10년 넘게 살면서 오산에 대한 애착이 많았
                       고, 특히 가족들은 내가 하려는 일에 대해 잘 공감                지만 이 분들에 비하면 깊이와 넓이가 다른 애정이

                       하지 못했다.                                     었다. 이 애정이 시발점이 되어 농업회사법인 오매
                       하지만 지금! 머리속에만 있던 그림들이 눈으로                   장터㈜를 세우고 지금은 번듯한 양조장을 짓고 설
                       보여지고 점차 완성되어 감에 따라 주변의 걱정도                  비를 갖추며 전통주교육도 진행 중이다.
                       응원으로 바뀌었다.

                                                                   고려시대의 문신이자 문인, 명문장가 이름이 높은
                       초기에는 ‘전통주 만든다면서 저렇게 어린 애가?’                 이규보는 백주시를 지었다. 청주에 대비되는 술로
                       라며 던지는 무시의 눈초리와 불신의 발언들을 모                  서의 백주이다. 애주가였던 그의 술에 대한 고찰
                       두 감수해야 했다. 전통주라하면 한복을 차려 입                  을 엿볼 수 있다.

                       은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손맛으로 빚는 술이라는                  일반인들은 청주(맑은 술)를 말하면 사케를 떠올
                       이미지 때문이었던 것이리라.                             리고, 백주를 말하면 중국의 고량주를 떠올린다.
                       ‘당신이 생각하는 전통이라는 편견을 깨면 새로운                  이 같은 오해 때문에 백주라는 명칭을 쓰는 것에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내 대답의 요지였다.                 대해 약간의 염려는 있지만 이규보의 동국이상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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