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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수동

                    제당의 주변은 약간 경사가 져 있으나 비교적 완만한 편이며, 주변의 숲은 주로 여러 그루의 참나
                  무들로 구성되어 있다. 제당은 약 한 칸 정도의 기와 건물이다. 서까래와 지붕은 흙과 나무로 되었으

                  며, 벽은 시멘트로 발라져 있다. 정면에는 양여닫이 문이 설치되어 있었으나 문이 썩어 떼어낸 상태
                  로 개방되어 있다. 제당의 정면에는 ‘誠惶堂’이라고 쓰인 현판이 걸려 있다. 제당 외부의 네 기둥에는

                  각각 동방지신, 서방지신, 남방지신, 북방지신이라고 씌어진 종이를 붙였다가 떼어낸 흔적이 남아 있
                  다. 제당 재부는 정면에 시멘트로 만든 제단이 설치되어 있고, 내부에는 제사에 필요한 각종 제기가

                  보관되어 있다.




















                    당주로 선출이 되면 황토를 대문 한쪽에 놓고 물을 떠놓았다. 부정한 사람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가수동의 산제사는 철저하게 유교식으로 거행된다. 당주와 제관, 축관이 제당에 올라가 희생으로
                  올리는 소의 내장 가운데 여러 부위를 삼아서 탕으로 올리고, 나머지 소의 모든 부위를 당집 내부의

                  좌측에 소를 옆으로 눕힌 듯이 전체를 올린다. 탕을 올리고 메를 올리기 위하여 사용하는 물을 모두
                  당우물을 길어다가 준비하였다.

                    당주와 제관, 축관이 절을 하고 나서 축관이 축을 읽는다. 그리고 마을의 대동소지와 가가호호의
                  소지를 다 올리고 나면 당집 앞에 있는 참나무로 간다. 참나무로 가면 세 사람이 함께 나무를 붙들고

                  서 ‘귀녀, 귀녀, 귀녀’라 외치는데 이는 산신을 모신다는 뜻이었다고 한다.
                    가수동의 당집인 ‘성황당’이 있는 산은 ‘가심이산’이라 불렀다. 이 산은 세교리까지 원줄기가 뻗어있

                  다고 한다. 세교리까지 산맥이 이어져 있다고 한다면 이는 독산(지곶동)에서 함박산을 넘어 가수리까
                  지 이어지는 산줄기라고 판단된다. 한편 가심이산에는 장사(壯士)가 나는 기운이 뻗쳐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인들이 산줄기의 맥을 끊어놔서 그 후론 장사가 나지 않았다고도 전한다.
      오산시사
                    가수동의 특성은 마을의 우물에서도 드러난다. 이에 대한 이해가 마을에 대한 이해의 근거가 된다.

                  가수동의 윗우물은 숫우물이었고, 아래우물이 암우물이었다고 한다. 암수우물은 각각 그 물빛이 달
      제

      6           라서도 구분이 되었다. 암우물의 물빛은 뿌옇고, 숫우물의 물빛은 퍼렇다고 한다. 그리고 암우물은
      권
                  아파트로 들어갔고 숫우물은 그 위에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암우물의 물맛이 매우 좋았다고 한다.
                  그런데 상여가 지나가면 우물이 뒤집혔다고 한다. 그렇기에 상여가 지나가려면 암수우물을 멍석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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