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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많은 누에머리산의 서쪽을 발파하였다 한다. 현재는 산의 형체를 거의 알아볼 수 없으며, 야트
막한 구릉형태로 배나무 과수원과 주택이 들어서 있다.
제당은 정면에 여닫이문이 달릴 한 칸 반 정도의 기와건물로, 정면에는 쌍여닫이문이 달려 있다.
문에는 열쇠를 달아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는데, 열쇠가 고장나 있는 상태이다.
출입문 위에는 성황당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당의 내부에는 정면에 시멘트로 만든 제단이 있고, 제
단의 아래쪽은 벽돌로 쌓아 내부 공간에 제구 등을 보관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었다. 제단의 아래
에는 알미늄 샷시로 미닫이 문을 설치하였다. 정면 제단 위의 벽에는 ‘城隍之神位 康座上神位’ 이라고
씌여진 신위(神位)가 각각 1개씩 걸려 있다. 제당 내부의 제단 오른쪽에는 조라술을 담그는 항아리와
작고 둥근 상이 각각 1기씩 있다. 당 출입문의 왼쪽에는 시멘트로 만든 제단이 1개 더 설치되어 있다.
당의 상량문에 의하면 현재의 당은 1998년에 신축한 것이다. 이전의 제당은 약 40년 전에 지어졌는
데, 화재로 소실되어 새 당을 마련하게 되었다 한다.
당의 근처인 뇌머리산에는 당우물이 있어 당제를 지낼 때 이 물을 떠다 제사의 제물을 장만하였고
또 부녀자들이 아들을 바라거나 순산을 기원하였다 한다. 현재 우물은 없다.
강 씨들이 주관하는 이 마을의 제사는 강 씨들이 이 마을에 들어와 살면서 당을 짓고 지내기 시작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물은 일반가정의 기제사와 같으며, 여기에 돼지머리와 낙지를 더 올린다.
제비는 별도로 추렴하지 않고 마을의 기금을 사용한다. 제사의 제관은 고정되어 있어 해마다 같은 사
람이 맡아서 한다. 제관이 바뀌는 경우는 제관을 맡아 보던 사람이 사망했을 경우이다. 제관의 집에
는 다른 마을의 제사에서와 같이 대문에 금줄을 치거나 황토를 뿌리지는 않지만, 제관 스스로 부정한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제물은 마을의 부녀자들이 맡아서 장만하지만, 부녀자들이 제사에 참가하지는 않는다. 제사는 초
헌, 독축, 아헌, 종헌, 소지의 순으로 진행되었으나 이제는 축문이나 소지의 과정은 생략되었다. 제사
에는 마을사람들이 많이 참가하는 편이며, 제사가 끝나면 음복을 하고 제물을 집집마다 나눠준다. 6)
이렇듯 갈곶동의 산신제가 강 씨들에 의하여 주관되고 있다는 점에서 여느 마을의 마을제사와는
차별성을 갖는다. 제관이 강씨로 한정이 된다는 것도 그러려니와 특별한 변고가 없는 한 한 사람이
지속적으로 제관의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도 특별하다. 여기에 제수용품으로 낙지를 사용한다는 점도
매우 특별한 점이라 하겠다. 낙지를 사용하는 의미에 대하여는 향후의 면밀한 조사를 필요로 한다.
4) 고현동(높은재)
오산시사
(1) 우물제사
고현동 높은재 마을에서는 정월대보름에 마을의 대동우물에서 우물제사를 지냈다. 소머리와 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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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물, 북어포를 올렸다. 소머리는 삶지 않고 그냥 반을 쪼개 놓았다. 집에서 밀주를 담가 쓰기도 하고
134 6) 『오산시의 역사와 문화유적』, 오산시,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