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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정된다. 관아는 동헌·서헌·객사 등의 건물과 객사 동쪽에 ‘운금루’라는 정자가 세워졌던 것으로
알 수 있으며, 정자 앞에는 연꽃이 핀 연못이 있었는데 조선 초에 중수된 사실도 확인된다. 6)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이 일대는 조선 초까지만 해도 수원 고읍성의 모습을 간직한 채 읍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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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을 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당시 구읍의 토성은 270보(步)이고 그 안에 우물이 2개 있던 것으로
확인되지만, 이후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확인되는 4,035척(尺)에 이르던 토성은 모두 허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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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기록되어 있다. 읍성으로서 토성의 기능은 이미 상실되었지만, 옛 수원부 읍치의 변화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 말 숭교리에서 조선후기 용복면으로 지명의 변화가 있었지만, 부의 읍치로서 위
상이나 기능 역시 큰 변화가 없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조 13년(1789) 옛 수원부 읍치 자리에 현륭원(顯隆園)이 조성되면서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되었다.
수원부 읍치가 있던 화산 자락에 현륭원이 조성되면서 그 일대에 화소(火巢)구역이 설정되고, 관아를
비롯한 건물과 민가들이 철거되었다. 현륭원에서 보이는 곳에 위치한 독산성은 화소의 사표(四標)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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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는 과정에서 홍범산·양산과 함께 금양(禁養)구역으로 설정되었다. 정조 사후에는 현륭원 인근
에 건릉(健陵)이 조성되자 왕릉의 금양지가 확대되었다. 이때 현재 오산시 지역의 독산성·양산봉·
노적봉 등을 비롯해 내외(內外) 안산의 역할을 하던 화산·성황산·태봉산·초봉·홍법산[현 홍범
산]·남산·안산·태봉산 등이 현륭원과 건릉의 금양구역으로 설정된 것이다.
정조대에 개편된 수원부의 행정구역에 앞서 조선전기 오산을 포함하는 수원도호부는 남양도호부
(南陽都護府), 안산(安山)과 안성(安城)의 2개 군(郡), 진위(振威)·용인(龍仁)·양성(陽城)·양지(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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智)의 4개 현(縣)을 관할하고 있었다. 조선후기 옛 수원부의 행정구역에 대한 개괄적 이해는 『수원
부읍지』(1789년 이전), 『호구총수』(1789년), 『화성지』(1831년), 『대동지지』(1865년), 『수원군읍지』(1899
년)등을 통해 알 수 있다. 다음은 위 사료를 토대로 오산시 소재 관할 면을 정리한 표이다.
표 1. 오산시 소재 관할 면 목록
『수원부읍지』 『호구총수』 『화성지』 『대동지지』 『수원군읍지』
(1789년 이전) (1789년) (1831년) (1865년) (1899년)
산성면 산성면 산성면 산성면 산성면
초평면 초평면 초평면 초평면 초평면
청호면 청호면 청호면 청호면 청호면
삼며곡면 삼미면 문시면 문시면 문시면
- 시봉면 (시봉면+삼미면)
오산시사 어탄면 어탄면 어탄면 어탄면 어탄면
제 5) 『수원시사』 1, 제2편 역사, 144쪽.
2 6) 최홍규, 『조선시대 지방사 연구』, 일조각, 2001, 96쪽.
권
7) 『세종실록』 권148, 지리지, 경기수원도호부.
8) 『신증동국여지승람』 권9, 경기, 수원도호부, 성곽.
9) 정해득, 『정조시대 현륭원 조성과 수원』 신구문화사, 2009, 343쪽.
130 10) 『세종실록』 권148, 지리지, 경기수원도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