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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13년(1789) 이전의 기록으로 추정되는 『수원부읍지』에서는 5개 면이 확인된다. 옛 수원부 읍치 131
를 기준으로 작성되었던 『호구총수』에는 시봉면이 추가되어 산성면·초평면·청호면·삼미면·시봉 역사
면·어탄면(魚呑, 현재의 동탄면 일부) 등 총 6개 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순조 31년(1831)에 / 유적
발간된 『화성지』에는 시봉면과 삼미면이 문시면으로 통합되어 산성면·초평면·청호면·문시면·어
탄면으로 되었다. 이즈음 확정된 오산의 행정구역은 19세기 말까지 특별한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었 · 유물
다. 다음은 정조대 이후 분할과 합병의 개편 과정을 통해 『화성지』를 바탕으로 현재 오산시 지역에 속
하거나 관련된 면·리·동을 정리한 표이다.
표 2. 19세기 오산시 현황
면 이름 위치 마을 이름 기타
산성면 남쪽 30리 서리, 남리, 지곶리, 신촌리, 양산리
수철리, 누읍리, 타종리, 마유동, 신촌, 모천촌, 용란리,
초평면 남쪽 40리
서촌, 여대리, 내창동, 어은굴리, 대화촌, 궁기리, 어인포
갈곶리, 기문동, 당리, 원통리,
청호면 남쪽 40리
부산동, 수덕동, 천변동
명학동, 죽담점, 묵암동, 신촌, 옛 시봉면과
문시면 남쪽 30리
용동, 평촌, 세교, 관음동 삼미면이 통합
장지촌, 기곡, 산척동, 이곡, 송촌,
어탄면 남쪽 30리
평촌, 신암리, 방교, 암산, 금곡
이즈음부터 부르기 시작한 마을의 이름은 현재 오산의 지명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산성면의 지곶
리와 양산리 등은 지금도 그렇게 불리고 있으며, 초평면의 누읍리와 궁기리는 지금의 궁터, 대화촌은
대호밭 일대의 명칭이다. 청호면의 천변동은 오산천변의 마을로서 오늘날의 오산동 일대라고 추정되
며, 문시면의 죽담점은 죽미령 근처, 묵암동은 금암동 일대를 말한다.
2. 인구와 교통의 변화
마을의 규모를 확인하기에 가장 용이한 지표는 호구수와 인구수이다. 여기서는 정조대부터 시작하
여 19세기 후반까지 간행되었던 위의 사료들을 토대로 오산의 호구수와 인구수의 변화를 추적해봄으
로써 조선시대 오산의 변화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수원 신도시가 조성되기 이전 옛 수원부의 모습은 『수원부읍지』를 통해 확인된다. 옛 수원부가 관
할하고 있던 면은 총 47개, 호구수는 1만 4,693호, 인구는 남자 2만 8,373명, 여자 2만 7,307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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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5만 5,680명이었다. 그러나 정조 13년(1789)에 간행된 『호구총수』의 경우 수원부 관할의 읍면은
11) 『수원부읍지』, 방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