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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절 18세기 현륭원 조성과 화성 건설
1. 현륭원 조성과 독산성
현륭원(顯隆園)은 융릉(隆陵)의 옛 이름으로 영조의 아들이자 정조(正祖, 1752~1800)의 아버지인
사도세자(思悼世子, 1735~1762)의 무덤이다. 본래 경기도 양주시의 배봉산(拜峰山) 자락[현재 서울
시 동대문구 휘경동에 있는 삼육서울병원 부지]에 있던 영우원(永祐園)을 정조 13년(1789) 수원의 옛
읍치였던 화산(花山)으로 옮겨 현륭원이라 한 것이다.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사도세자의 ‘사도’라는 시호(諡號) 앞에 ‘장헌(莊獻)’을 덧붙이고, 수은묘(垂恩
墓)의 이름을 한 단계 높여 영우원(永祐園)으로 고쳤다. 또한 제사를 지내는 사당(祠堂)인 수은묘(垂
恩廟)는 경모궁(景慕宮)으로 한 단계 높여 부르게 하였다. 정조는 아버지에게 씌워진 죄인이라는 허
물을 벗겨내어 친부의 명예를 회복시켜 효도하는 것은 물론 동시에 왕권 강화를 위해 사도의 복권을
위한 일련의 행보를 시작한 것이다. 53)
그림 4. 융릉[현륭원] 전경
오산시사
사도세자의 무덤은 사망 당시 죄인의 신분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후 관리되지 못하여 매우 초
제 라한 모습이었다. 햇살을 받지 못한 봉분(封墳)의 풀들이 말라 있었고, 무덤의 위치와 인근의 지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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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적으로 좋지 않았다. 수은묘가 영우원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무덤을 옮기지도 석물(石物)들을
146 53) 유봉학, 『꿈의 문화유산, 화성』, 신구문화사, 1996, 91쪽. - 화성 신도시 관련 전반적 서술은 이 책을 참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