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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 군사적 요새로 주목받게 되었다. 그 결과 임진왜란으로 인해 허물어진 산성을 경기관찰사 유근(柳

                  根, 1549~1627)의 주도 아래 수축한 후 백성들을 모집하면서 곡식을 저장하기 위한 창고도 설치되었                                      역사
                  다. 87)                                                                                           /  유적

                    사창(四倉)은 화영으로 승격하기 전에 산성 내 관청의 서쪽에 대청 3칸, 창고 60칸이 설치되었다.                                       · 유물
                  창고의 관리는 색리 1인과 고지기 1인으로 독산성의 교리(校吏)와 노(奴)가운데 차출하였다. 사창은

                  독산성의 군향(軍餉)을 저장하는 곳으로 이용되었다.
                    오창(五倉)은 사창의 동북쪽에 위치하였는데 본부에서 차출한 감관이 파견되어 관리하고 있었다.

                  오창은 본부의 환자[還上]를 쌓아두는 곳으로 봉상청 전퇴 4.5칸과 천자고(天字庫) 8칸, 지자고(地字
                  庫) 7칸, 현자고(玄字庫) 6칸을 갖추고 있었다. 사창과 오창은 수원부의 산창(山倉)을 재정비하여 운

                  영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87)  『선조실록』 권55, 선조 27년 9월 19일(갑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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