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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유적 · 유물
그림 10. 내삼미동 유적(한국문화유산연구원) 10호 집터 및 출토유물, 전경 및 세부사진
(韓國文化遺産硏究院 2012에서 수정 후 인용)
집터는 남쪽 부분이 사면의 삭평으로 인해 멸실된 상태이며, 잔존규모는 길이 2.84m, 너비 1.75m,
깊이 0.16m 정도이다. 북쪽 벽에 인접하여 부뚜막과 구들이 시설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중앙부에
목탄과 불에 탄 흔적이 있고 북동벽에 인접하여 벽을 따라 바닥면이 집의 바닥보다 깊은 점으로 보아
‘ㄱ’자 형으로 추정된다. 내부에서 완 2점과 굽다리접시 다리 부분, 대형 항아리 편이 출토되었다.
집터에서 남동쪽으로 약 100m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백제의 저장시설로 추정되는 원형구덩이와
용도를 알 수 없는 구덩이 수 기가 확인되었는데, 그중 신라의 유물이 출토된 유구가 있다. 또한 집터
의 북서쪽 능선 상부에 백제 저장구덩이로 추정된 유구에서 신라 유물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신라 유
물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해당 유구는 4·133호 원형 구덩이, 3·4·5·6호 기둥이이며, 신라 집터
의 반경 100m 안에 위치하므로 삭평된 신라 마을과 관련된 시설일 것으로 판단된다. 반면 백제의 특
징적인 시설 중 하나인 단면 플라스크 형태의 구덩이는 능선 상부에 집중으로 분포하는데, 이러한 양
상은 오산시 관내에서 확인된 다른 백제 마을유적에서도 관찰된다. 이 유적에서 확인된 백제 및 신라
의 유구가 재지인들에 의해 영위되었는지, 혹은 백제인이 마을을 떠난 후에 유입된 신라인들이 정착
하였는지 판단할 수 없지만, 마을의 입지가 능선 상부에서 곡간부로 이동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
표에서 채집된 대형의 항아리 바닥면에 도침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토기 뚜껑이 붙어있는
데, 유물의 형태상 7세기 중~후반경의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보았을 때 신라가 오산으로 진출한
이후 어느 시점부터 7세기 후반 경까지 마을이 영위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