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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집터는 남단부 절반 가량이 멸실되었는데, 잔존규모는 길이 3.12m, 너비 1.85m, 깊이                                       385
                  0.2~3m 정도이다. 내부시설은 부뚜막이 확인되었는데, 북서쪽 장벽에 위치하였다. 부뚜막 내부                                           역사

                  에서 소량의 할석이 확인된 정황으로 보았을 때 1호 집터와 마찬가지로 석재를 이용하여 짧은 구들                                            /  유적
                  을 조성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불을 땐 자국과 함께 다량의 목탄이 분포하는 구간을 통해 길이 약

                  1.2m, 너비 약 0.8m 정도 규모로 추정할 수 있다. 유물은 무른 질의 항아리 편이 바닥에 여러 점 산                                    · 유물
                  포한 상태로 출토되었으며, 집터의 북동쪽 모서리 바닥면에서 굽다리접시 편이 출토되었다. 3호 집

                  터의 경우 조사단은 삼국시대 집터로 보고하였으나, 정황상 후대에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9. 독산성(禿山城)

                    지곶동 155번지에 위치한 독산(禿山 혹은 禿城山, 해발 208m)의 정상부와 곡부를 포함하며, 7~8

                  부 능선을 둘러싼 석축산성이다. 둘레는 약 1,095m 정도이며, 잔존하는 높이는 약 5~10m 정도이다.

                  임진왜란의 승전과 함께 권율장군이 쌀로 말을 씻은 일화로 잘 알려져 있으며, 1964년 8월 29일 사적
                  제140호로 지정되어 보존·관리되고 있다. 1999년 한신대학교 박물관의 지표조사를 통해 산성의 현
                  황과 내부에 다량의 유물이 산포하고 있음을 확인하였으며,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이

                  채집된 바 있다, 이후 여러 차례의 시굴 및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는데, 북동쪽 치 및 북벽 일원의 복원

                  성벽 하부에서 조선시대 수축성벽과 함께 삼국시대 초축성벽이 확인되었다.
                    성벽은 산의 암반을 성 내측에서 외측, 높은 곳에서 낮은 방향으로 모두 깎아낸 후 길이 30~50cm
                  정도의 장방형으로 치석한 성돌을 이용하여 외벽을 쌓음과 동시에 면석의 뒷부분에 판상형의 할석을

                  맞물리게 하여 쌓아 올렸다. 내벽은 북벽 일원의 시굴조사에서 확인되었는데, 성벽 내측 암반 상부에

                  토사를 이용한 둔덕을 조성한 후 내벽의 성돌이 전체 성벽과 맞물리면서 쌓아 올린 형태이다. 이 경
                  우 면석이 흔들리거나 탈락되지 않도록 함과 동시에 성벽의 속을 흙이 아닌 돌로 채워 견고해지는 효
                  과가 발생하며, 안정된 지반을 확보함과 동시에 성 내측의 대지를 암반면보다 높게 조성하여 생활공

                  간을 마련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형태의 성벽을 ‘협축성벽(夾築城壁)’이라 하는데, 내·외측 벽을 돌로

                  수직에 가깝게 쌓아 올린 것이다. 외벽 하단부에는 약 0.5m 정도 높이의 보축성벽이 확인되는데, 성
                  벽의 바닥부분이 외측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돌을 이용하여 덧댄 성벽을 말한다. 잔존하는 성벽은 절
                  반 이상이 모두 삭평되었으나, 구조적인 특징으로 볼 때 6세기 중반 이후 경기지역에 축조되는 신라

                  산성의 형태이다. 이와 더불어 기존의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굽다리접시, 인화문토기 등을 통해 볼 때

                  독산성은 삼국시대 신라에 의해 축조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삼국시대 독산성의 축조와 활용에 대한 내
                  용은 제6장에 자세하게 기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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