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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관못 6점이 출토되었다. 돌방의 입구는 너비 0.77m, 높이 0.5m 정도이다. 조사단은 유구에서 389
출토된 유물이 없어 판단하기 어려우나, 기존에 조사된 다른 지역의 유적과 연구 성과를 통해 보았을 역사
때 7세기 후반에서 8세기 후반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보았다. / 유적 · 유물
그림 2. 가장동 유적 5-8지점 돌방무덤 및 출토유물(서경문화재연구원 2013에서 수정 후 인용)
2. 궐동 유적(闕洞 遺蹟)
궐동·금암동 일원에 위치하며, 오산 세교2지구 택지개발사업을 위해 중앙문화재연구원에서
2009~2011년에 걸쳐 실시한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유적이다. 석산(해발 135.3m)에서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낮은 구릉들이 분포하고, 이들 사이의 곡간부에 농경지가 위치하고 있었다. 조사 결과 청동
기~조선시대에 이르는 유구 252기가 조사되었으며, 716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돌널무덤 6기가 확인되었는데, 1지점 1기, 4지점 1기, 5지점 4기 등으로 모두 잔존상태가 좋지 않
고, 대부분 벽석 1~3단 정도만 남아 있었다. 벽석은 20~50cm 정도의 긴 할석을 가로로 쌓았으며,
벽석 사이의 틈새는 소형의 할석을 채웠다.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이 없기 때문에 명확한 시기를 알
수는 없으나, 인근의 내삼미동 유적, 탑동·두곡동 유적, 화성 장지리 유적, 평택 소사벌 유적 등의
사례를 통해 보았을 때 통일 이후인 7세기 후반~8세기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