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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조사 결과 삼국~조선시대에 이르는 유구 8기와 569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391
                    유구는 석렬 2기, 주혈군, 수혈 2기, 구상유구 등이 확인되었는데, 대부분 멸실이 심한 편이다. 석                                      역사

                  렬은 북-남 방향으로 평행하게 위치하였으며, 길이는 1호가 17.4m, 2호는 9m 정도 잔존하고 있었                                        /  유적
                  다. 이러한 유구들은 비록 큰 특징이 없지만 중요한 것은 유구에 비해 토기, 철기, 석제품 및 토제품

                  등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유물들이 다수 출토되었다는 점이다.                                                       · 유물
                    토기의 경우 단각고배, 뚜껑, 대부완, 연질의 옹호류, 파수, 벼루 등 기종이 다양하며, 시기는 6세

                  기 중반에서 8세기에 걸친 긴 시간의 것이 모두 확인되었다. 대체적으로 이른 시기의 유물이 적은 편
                  이고, 8세기대에 해당하는 유물들이 중심을 이루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른 시기의 유물은 대각의

                  투창이 시문된 단각고배류와 연질의 완류, 호류의 파편 등이다. 더불어 통일신라의 대표적인 토기인
                  인화문토기는 문양이 다양하게 확인되는데, 7세기 전반에서 8세기대까지 유행하는 수적형문, 마제

                  형문, 점열문 등이다. 토기의 전체 수량이 488점에 이르며, 오산시 내에서 확인된 유적들 중 압도적
                  인 수량이 확인된 것이다. 이 가운데 특히 명문토기들이 출토된 점이 주목되는데, 인화문토기 뚜껑의

                  내면에 ‘화산(華山)’, ‘염(塩)’ 등이 음각되어 있었고, 대부완 내면에 ‘천(川)’과 ‘수□(水□)’, 대옹 외면에
                  ‘정(井)’, 그리고 원형토제품에 ‘란(卵)’이 새겨져 있었다.

                    더불어 좁은 유적범위 내에서 다종다량의 철기들이 출토되었는데, 그중 농구류는 기경구, 중경구
                  및 수확구가 모두 확인된다. 기경구는 주조괭이편과 보습편이 있다. 이는 당시 농법이 보습을 이용

                  하여 심경(深耕)이 가능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우경이 실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중
                  경구인 살포는 1점이 출토되었으며, 수확구로는 낫이 출토되었다. 공구로는 철제 도자가 확인되었

                  고, 철촉과 찰갑편 등의 무구류도 확인되었다. 또한 차관편과 솥편, 집게형철기 등 다양한 철기들이
                  확인되었다. 중요한 것은 유구 내부에 목탄들이 국지적으로 분포하고 있었으며, 수혈 내부 토양에서

                  미량의 단조박편이 검출되었다는 점이다. 삭평과 재퇴적 등으로 인해 단야로나 송풍관, 단야도구 등
                  단야작업과 관련된 유구 및 유물이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출토양상을 보았을 때 존재하였을 가능성

                  이 있다.
                    조사 내용을 통해 보았을 때 양산동 유적은 일대의 중심지 혹은 치소의 성격이 강한 시설이 존재하

                  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토기 내면에서 발견된 ‘수□(水□)’자는 수성군의 수성(水城)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독산성에서 발견된 ‘수’자명 기와와도 같은 맥락일 것으로 추정된다. 더불어 현재 안녕동에

                  위치한 ‘화산(花山)’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 수원 일대의 거점이던 수원고읍성의 배후산이다. 현재
                  융건릉이 위치하고 있으나 발굴조사를 통해 고읍성의성벽이 확인된 바 있으며, 백제 및 통일신라 고

                  분이 분포하고 있다. 따라서 토기에 시문된 ‘화산(華山)’은 현재의 화산으로 추정되며, 주변 유적과 지
                  리적 특성으로 보았을 때 수성군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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