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8 - 전시가이드 2023년 10월 이북
P. 38

전시가이드 쉼터


        우린 갔지. 아프로디시아스


        글 : 장소영 (수필가)
























        어쩌다 바보 같은 나의 착각으로 우린 갔다. 라오디케아가 아닌 아프로디시아       승객은 우리 둘과 기사 친척 아이 둘 뿐이었다. 언제쯤 아프로디시아스에 도
        스를. 아들이 몇 번이고 확인하는데도 거리낌 없이                     착하며, 올 때는 어떡하나 하는 근심이 마음에 차오르니. 바깥 풍경은 눈에 들
        “그래, 거기로 가.”                                    어오지도 않고. 부쩍 말 수가 줄어든 아들은 딱딱한 표정으로 줄곧 앞만 주시
        반복해 확신했다.                                       할 뿐이었고…….

        긴 시간과 많은 비용을 출혈해야하는 고생길이 펼쳐져 있음을 그 땐 몰랐다.       꽤 긴 체감시간 끝에 도착한 아프로디시아스는 울창한 나무들만 있을 뿐, 인적
        아들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도 눈치 못 챌 만큼 나는 새로운 곳을 향한다는 설      도 없이 12월 겨울바람만 거셌다. 뭔가 쎄했지만 어쩌겠나, 이미 돌무쉬는 떠
        렘에 푹 빠져있었다. 타국에서 전혀 다른 언어로 지명을 부르다보니 여기가        나버렸고, 나무 몸통에 어설프게 붙여놓은 배차시간을 확인하고 매표소로 향
        저기 같고, 저기가 그 곳 같을 땐 지도를 보고 확인을 해야 하는 데, 지나친 확   했다. 관객이라고는 우리 둘 뿐인데 입구부터 석관들이 나열해 있으니, 더 썰
        신이 화를 부른 것이다.                                   렁했다. 그나마 커다란 메두사 머리가 오느라 고생했다고 마중하는 것 같았다.
                                                        입구 끝 오른 쪽엔 출토된 유물을 전시해놓은 박물관이 있었다. 기원전 2세
        어쨌든 새로운 기대로 하루의 여정을 시작했다. 파묵칼레에서 이른 아침에 출       기 로마시대에 조성된 도시 유적답게 섬세하고 거대한 대리석 신상과 조각,
        발해 데니즐리로 와 야간 버스를 예약하고 짐을 맡긴 채 부리나케 아프로디        부조와 더불어 고대철학자 소크라테스, 피타고라스 등 우리에게 익숙한 두상
        시아스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출발 전 아들이 ‘시간에 맞춰 올수 있으려나?’     이 전시돼 있었다. 거의 로마시대의 헤어스타일과 패션을 한 곳에 모아놓은
        걱정을 하는 것이다. 난 당당히 ‘얼마 안 걸리니 오지’ 하고 창밖 풍경에 시선    듯 흥미로웠다.
        을 둔 채 건성으로 답했다.
                                                        박물관에서 나와 다시 오른 쪽 길을 따라 걷다보니 멀리 하얀 대리석의 당당한
        버스는 완행이라 곳곳마다 정류장이 없는 곳에서도 승객을 태우고 출발하고         풍채 테트라필론이 눈부신 풍경으로 다가왔다. ‘4개의 문’이라는 뜻의 이 석물
        를 반복하며 갔다. 직행이 아닌 것은 그렇다 치는데 중간 지점 쯤 우리가 가야     은 아프로디시아스를 상징하는 문으로 신전에 들어가기 전 참배객들이 몸과
        할 표지판에 적힌 카라쿠스로 꺾어들지 않고 계속 직진만을 한다.             마음을 준비하는 곳이란다. 반갑게도 몇 명의 관광객이 인솔자의 설명을 듣
        혹시 중간에 내려 갈아타는 곳이 있겠지 하는 기대마저 시간이 흐를수록 희박       고 있었다. 이곳으로 가는 길 왼쪽에 작은 무덤이 하나 있어 읽어보니 아프로
        해지고 전전긍긍하는 사이 나질리 터미널까지 와서야 버스가 멈췄다. 나질리        디시아스 발굴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고고학자 캐난 T.에림이 잠들어 있단다.
        에서 버스기사에게 확인하니 여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카라쿠스로 가야된단         그림같이 아름다운 테트라필론에 도착해 보니 섬세한 조각과 디자인이 아름
        다. 한참을 기다려 배차된 카라쿠스 버스를 타고 오던 길을 되돌아 달려서야       다워 무너지기 전에는 얼마나 웅장하며 화려한 곳이었을까 싶었다. 유적지가
        비로소 지나친 중간 지점 길로 들어서는 버스다.                      워낙 넓어 빨리 돌아야한다는 급한 마음에 사진만 두 어장 남기고 성급히 원
                                                        형 경기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구불구불 산길과 언덕을 넘어가고, 흩어진 시골집을 들락날락 돌아가며 완행
        버스는 조급한 우리 마음과 달리 느릿느릿 서행을 하며 시골길을 누비는 거        풀밭 샛길을 한참 걸어 도착한 거대한 타원형의 경기장은 1세기에 만들어졌
        다. 오랜 시간을 거쳐 겨우 카라쿠스에 도착하니 아프로디시아스까지는 또 돌       는데 길이 268m에 수용인원 3만 명이나 되는 거대한 규모다. 거의 원형이 보
        무쉬를 이용해야 했다. 배차 시간이 일정치 않아 사무실을 들락거리며 확인하       존되어 있어 지금이라도 경기를 치를 수 있을 정도였다. 전차경주, 검투사 경
        고 한없이 기다린 후에야 돌무쉬를 탈 수 있었다.                     기 등이 치러졌다는데 양쪽에 선수 출입구가 있어 내려가 관람석을 올려다보
                                                        니 영화 ‘글래디에디터’가 생각났다. 강렬한 인간의 욕망과 용기가 폭발하니



        36
        36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