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9 - 전시가이드 2023년 10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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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보도자료는 crart1004@hanmail.net 문의 010-6313-2747 (이문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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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의 환호성 또한 하늘을 찌를 듯 했을 것이다. 이 경기장에서도 비슷한 도 있고 황제부부가 앉았을 것 같은 의자도 따로 있었다. 관객석 곳곳에 원형
수많은 경기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대리석과 돌로 만든 관람석에 앉아 그 모양의 새김 흔적들과 또 다른 새김 흔적이 있었는데 종교를 뜻하는 것이 아
당시를 상상해 보았다. 닌가 짐작되었다.
이때쯤 이유는 모르지만 굳어 있던 아들의 표정이 조금은 누그러지고 말도 잠시 황제도 되어 보고 귀부인도 되어 보는 호사를 누리다 무대 쪽으로 이동
건네 온다. 뭔가 심기가 불편해 보일 땐 가만히 두는 것이 상책이라는 걸 그 했다. 무대 앞 기둥들도 옛 모습 그대로인 듯 완벽했다. 그리고 무대 뒤 쪽에
동안 여행길에서 터득한 요령이라 될 수 있는 대로 멀찍이 떨어져 다녔다. 물 펼쳐진 아고라 역시 부흥기의 모습을 많이 지닌 채 로마의 지나간 시절을 반
론 여행을 마친 후에야 우매한 엄마의 선택에 마음고생 했음을 알았지 그때 추하고 있는 것 같았다. 로마사람들이 모여 흥성댔을 이 아고라엔 이젠 정적
는 영문을 모르니 나는 나대로 마음이 불편했다. 때로는 모른 게 약이라고, 아 만이 감돌고 여기저기 풀이 누리끼리하게 시들어 겨울잠을 청하고 있었다.
들의 표정이 평상시와 같으니 나도 밝아져 찾은 곳은 아프로디테 신전이었다. 아고라를 벗어나 아무렇지 않은 듯 쌓아 놓고 던져놓은 들판의 유물 하치장을
14개의 기둥만 남긴 폐허의 아프로디테 신전은 도시의 수호신 아프로디테 여 지나 아프로디테 여신과 로마황제에게 바친 복합 사원 세바스테이온을 끝으
신을 모시던 신전이란다. 로마에서는 비너스라고 불렸다는 데 이 여신은 사랑 로 광활한 아프로디시아스 유적 탐방이 끝났다.
의 여신으로 알려졌다. 옛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무너져 부서지고 깨지
고 마음대로 널 부러져 뒹굴고 있는 조각들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로마의 공들인 건물들도 이제는 대지진과 전란에 폐허가 되어 역사의 뒤안길
로 사라졌다. 자연은 유구하고 인걸은 간 곳 없다는 시조의 한 대목처럼 남은
신전과 가까운 곳에는 주교나 총독이 머물렀다는 비숍 하우스가 있으며 오데 흔적들은 우리에게 무상함을 전달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핵공포와 기
온이라는 음악당이 있었다. 안내문을 보기 전까지 우린 재판이 열리는 법정 후변화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연료 부족과 식량위기는 당장 겪고 있는 시련이
이라 생각해 법관들은 이렇게 앉아 죄인을 심판하고 저렇게 재판을 참관했겠 기도 하다. 우리는 어떤 역사를 후손에게 남길 것인가 궁금해진다.
지 라며 이리저리 상황을 연출해 봤더랬다. 그런데 음악당이라니, 실소가 터
질 수밖에 없던 장소였다. 그러나 당시 오랜 시간 심오한 역사를 되짚고 현재를 논하기에는 우린 너무 지
치고 배가 고팠다. 2시간여 되는 관광을 하겠다고 7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을
해가 서편으로 더 기우니, 눈은 위대한 유적으로 살찌우며, 배는 곯는 기이한 오가는 데 허비했으며, 정확하지 않은 배차시간에 마음까지 졸여야했기 때문
상황이 됐다. 점심시간을 훨씬 넘겼지만 우리가 먹을 거라고는 물 한 병과 에 이다. 이 생고생이 목적지 판단 오류였음은 튀르키예 여행을 마친 뒤였고, 아
너지바 2개가 전부였다. 아무 정보도 없이 엉뚱한 곳으로 이동했으니 당연 들은 엄마가 정말 가고 싶어 하니 침묵해줬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일정상
한 결과였다. 배고픔을 잊으려 잰걸음으로 다른 유적지인 히드리아누스 욕 데니즐리에서 가까운 라오디케아를 목적지로 정해놓고선 아프로디시아스로
탕으로 이동했다. 향한 건 분명 아프로디테 여신이 나를 홀린 것이리라.
남녀 탕이 구분되어 있었고 냉탕, 온탕, 탈의실까지 갖춘 초대형 목욕탕이었 4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여행 안내서를 넘기다 이런 글귀를 발견하게 되었다.
다. 로마시대의 목욕문화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라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한 방문은 극히 힘든 편, 시간도 오래 걸리고 배차도 일정치
데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한 떼의 현지 고등학생들과 인솔교사가 우리의 않아 엄청 불편해 개별적으로 방문하는 여행자는 거의 없다.’ 이에 대한 아들
주변에서 시끌시끌했다. 그동안 초입에 서너 명의 관광객 말고는 우리밖에 없 의 반응이 재밌다.
어 고적하기조차 했는데 참 즐거운 소음이었다. “……우린 갔네.”
헛웃음이 나왔지만 고생한 만큼 인상적이고, 다시는 못 갈 것 같기에 후회는
욕탕에서 시선을 돌리니 욕탕 옆으로 펼쳐진 어마어마한 규모의 수영장이 눈 없다. 그렇지만 두고두고 아들한테 미안한 일화인 것만은 확실하다.
앞에 펼쳐져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철책이 쳐져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압도
적인 크기의 수영장은 현대의 시각으로 봐도 아직까지 접하지 못한 엄청난 크
기였다. 전체를 조망하려 높은 언덕에 올라 내려다 본 수영장은 감탄 그 자체
였다. 하지만 워낙 길이가 길어 카메라에 다 담을 수 없어 마음에 새길 수밖에
딴 도리가 없었다. 그만큼 우리가 경탄한 타원형 경기장보다도 더 길어보였다.
어떻게 저기에 물을 채우고 관리를 했을까하는 의문과 동시에 고된 노동력을
제공해야했던 신분들에 대한 동정도 같이하는 공간이었다.
언덕엔 바람이 더 거세 어깨를 웅크리고 원형극장 쪽으로 내려오니 바람은 없
고 햇볕이 따뜻했다. 그동안 거친 다른 지역 원형극장과 비교해 완벽하니 옛
모습 그대로인 듯했다. 극장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관객석에는 귀빈석
•한맥문학 신인상 등단(1994)
•광주문인협회 회원
•광주문학 현 편집위원
•'월간전시가이드 쉼터'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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